[카페 2030] 맘 카페와 수능
한파 대신 비가 내린 수능 날 오전, 간절히 기도문 읊는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하소서’ ‘당황도 실수도 말게 하소서’. 기도회가 열린 곳은 유명 사찰도 교회도 성당도 아니었다. 서울의 한 맘 카페에서 열린 온라인 기도회였다. 14행짜리 수험생을 위한 기도문에 1시간도 안 돼 30여 명이 댓글로 화답했다. 이 외에도 ‘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수험생 엄마로서 차분하게 시험 보고 오길 빈다’며 나름의 방식으로 기도를 올리는 글이 줄을 이었다.
수험생을 시험장으로 들여보낸 엄마들이 달려간 곳은 왜 하필 맘 카페였을까. 거리에서 시민을 인터뷰할 때면, 가장 성공률이 낮은 사람은 유모차를 끌거나 학생 자녀와 함께 있는 엄마들이었다. 자녀에게 피해 갈까봐 경계심도 높고, 실명으로 의견 내놓기를 어려워했다. 그들이 모인 지역 맘 카페는 분위기가 달랐다. 엄마라는 공통점과 익명성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점 커졌다. 최근 이 커뮤니티의 특성을 분석한 ‘맘카페라는 세계’(사이드웨이)라는 책도 나왔을 정도다.
맘 카페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은 ‘질문하는 글’이다. 새롭고 날카로운 자기주장을 펼치는 글은 보기 어렵다. 어떤 유치원을 보낼지, 학원은 언제부터 보내는 게 좋을지, 가끔은 주말 나들이를 어디로 가야 할지까지 묻는다. 수능처럼 인생에도 정답이 있고 맘 카페 선배들에게 듣는 것이 정답이라 믿는 것처럼 보였다. 명확한 답을 듣지 않더라도, 묻는 행위 자체로 불안을 해소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진지한 고민을 토로한 글에 ‘왜 그랬냐’며 타박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많이 힘드셨겠다’라며 공감만 해도 위로를 받았다며 고맙다고 댓글을 단 이들이 많았다.
그런 커뮤니티가 혐오의 대상이 될 때는 뒤틀린 모성애를 보여줄 때다. ‘수험생 ADHD 약 효과 있나요’ ‘수능 주사 병원 정보 구해요’라는 글을 볼 때면, 외부에서 맘 카페 하면 떠올리는 ‘극성스러움’ ‘감정 우선’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면만 보고 혐오하는 것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자녀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조바심이 내재돼 있었다. 이런 조바심은 기름과도 같아서 동네 소아과와 식당을 문 닫게 하는 가짜 뉴스가 불길처럼 번지기도 했다.
맘 카페에서 열린 온라인 기도회를 보니, 엄마들이 가진 불안의 근원이 수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수능 날 온 나라가 멈춘다고 한다. 온 경찰력을 동원하고 비행기도 이착륙 시간을 바꾼다. 수험생과 엄마들을 위한 배려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수능이 이들 인생의 전부라고 역설하는 셈이다. 아들 낳으라고 온갖 좋은 약 갖다 바치는 시어머니 같다고 하면 심한 비유일까. 고맙기는커녕 좋은 성적만 강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수능처럼 정답 인생만 인정하는 사회에서 맘 카페 회원들을 극성이라고 비난만 할 순 없다. 다만 맘 카페 밖, 시험장 밖에도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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