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리면 지방 의료도 좋아진다는 보도, 근거·설득력 부족해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3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별아(소설가),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태수(변호사),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메가시티]
-<與의 ‘메가 서울’ 카드, 광명 구리 하남 고양 부천으로 확대하나>(10월 31일 자 A3면)는 김포의 서울 편입 주장과 함께 다른 인접 도시들의 서울 편입 가능성을 소개했다. 서울 확장은 수도권 집중 완화 및 지방 활성화에 국민들이 공감한다는 점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주제이다. 하지만 여당의 주장과 야당의 반발을 주로 소개하고, 국가 균형 발전 및 국가 경쟁력 등 폭넓은 시각에서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젠 국가 아닌 도시 경쟁”... 세계 33곳이 메가시티 프로젝트>(11월 9일 자 A5면)에서 다른 나라의 메가시티를 소개했지만, 주로 ‘도시 편입’이 아닌 ‘도시 연계’ 강화를 통한 대도시와 주변 지역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김포의 서울 편입’과는 맥락이 다르다. 메가시티에 대해 정치적 논의를 넘어 근본적·거시적 시각을 담은 접근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낮추고 포용해야”… 與, 정신 차릴 기회 준 국민에 감사를”>(10월 16일 자 A4면)에서 시작한 <정치에 할 말 있다> 시리즈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 정치에 대한 고언(苦言)을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원로, 천안함 유족,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어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 어쩌면 특별한 고언도 아니고 지극히 원칙적인 이야기인데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정치권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함, 위기감이 느껴지는 기획이다. 정치에 대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발굴·전달하는 기사가 많아져야 한다.
-10월 19일 자 <[김창균 칼럼] 이럴 거면 뭐 하러 용산 이전 고집했나>와 <[社說] 윤 대통령 "국민이 늘 옳다", 인사도 그렇게 하고 있나>는 소통이 부족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따끔하게 비판했다. 이견(異見)을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장점 중 하나인데,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최근 여야의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언론의 강력한 비판자 역할이 필요하다.
[민생 현장]
-<尹 “원자탄에도 안 깨질 콘크리트벽... 국민들, 정부한테 느껴”>(10월 30일 조선닷컴)는 대통령실이 민생 현장 방문 결과를 배포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이 마치 캠페인하듯 현장 방문에 나섰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태도도 이해되지 않는다.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들이 현장 방문하고 돌아와 문제를 제기했다면, 이는 각 부처 장관과 공무원, 그리고 국회(여당) 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정책 형성 절차가 왜곡될 수 있다.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의 허실을 지적해야 한다.
-<”미군은 날 구했고, 난 그의 손자에 장학금... 내 삶이 한미동맹 표본”>(10월 24일 자 A8면) 등 한미 동맹 70년 시리즈는 양국 관계를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제 단발성 미담(美談) 발굴을 넘어 종합적인 조망을 해줄 필요가 있다.
-’벼랑 끝에 선 지방의료’ 특집 기사 중 <성형·피부과 쏠림 있더라도... 의사 늘려야 필수 의료까지 낙수효과>(10월17일 자 A5면)에서 “일단 의사 수를 늘려 놓으면 필수 의료 분야와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고 했다. 의사가 서울에 너무 많이 몰려 있고 지방에 의사가 없으니까 의사를 늘리면 낙수효과로 지방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OECD 통계 중 리투아니아, 일본, 튀르키예, 핀란드 케이스를 살펴봤는데, 의사가 많은 나라들이나 의사 수가 급증했던 나라들에서 도시와 지방 간 의사 밀도가 줄어들었다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의사를 늘리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은 낙수효과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것이라고 추정하는지 근거가 부족하다. 의료 공급이 부족해서 지방 의료가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수요가 부족해서 붕괴 중이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 보도를 보면서, 궁금한 것은 과연 마약이 ‘범죄’인가 중독이라는 ‘질병’인가 하는 점이다. 기사는 유명 연예인 누가 어디서 어떻게 약을 구해 누구와 함께 몇 번 투여했느냐를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다. ‘범죄’라면 적발과 단죄를 강력히 촉구해야 하고, ‘질병’이라면 예방과 치료 대책이 나와야 할 텐데, 관련 보도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다. 우리 사회에 마약이 대중화되고, 접하는 연령층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후자 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스타 아닌데도... 美 배우 죽음에 韓 3050도 애도>(10월 31일 자 A22면)에서 최근 사망한 미국 배우 매슈 페리가 회고록 등을 통해 자신의 약물 중독 과거를 고백하며 중독 극복 노력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보도했듯이, 대중 스타의 마약 관련 보도도 중독 위험성을 고백하고 치유를 응원하는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돌아온 ‘나쁜 놈들’ 전성시대: 전국 조폭 5500여명 10년새 최다... 그중 38%가 MZ세대 >(10월 17일 자 A12면), <MZ 노조 “인력 부족, 양대 노조 책임... 파업 명분 있나”>(10월 20일 자 A10면) 등은 공통적으로 MZ세대를 거론하고 있다. 앞 기사에는 MZ세대의 어떤 특징이 조폭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기술이 없는데, 왜 ‘MZ 조폭’이란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안 된다. ‘MZ 노조’ 기사에서는 반대로 MZ세대가 ‘합리적’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청년층은 ‘MZ’ 용어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MZ세대라는 이름을 붙여 강조하는 것은 언어 폭력적 측면이 있다. <다문화 가족 대신 ‘이주민’으로 불러주세요>(11월 4일 자 A2면)처럼 ‘MZ’ 표현을 사용하는 데 성찰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차별]
-<식당·은행·관공서... 노인 위한 디지털은 없다>(10월 23일 자 A1면)를 비롯한 <디지털 차별 받는 노인>(10월 23~26일) 기획 기사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구직·공공 서비스 신청 등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겪는 노인들의 불편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노인을 차별하는 디지털화는 ‘인권(人權) 이슈’일 수 있다. 노인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못 따라간다라고만 얘기할 게 아니라 디지털화가 넘어가기 어려운 장애처럼 느끼는 사람에게는 차별일 수 있다는 문제 제기까지 가야 한다. 노인 친화적 디지털화, 노인 교육 등 문제 해결 방법도 촉구해야 한다.
-<”아이 낳으면 자동으로 육아휴직”>(10월 31일 자 A1면)은 저출산위가 추진 중인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을 소개했다. 그런데 육아휴직의 경우, 대기업 및 공공기관과 중소기업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대기업 등은 육아휴직자가 생기더라도 대체 인력 확보가 용이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대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종사자들이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으려면, 인적·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핼러윈 참사 1년, 바뀐게 없다>(10월 25~28일) 기획 시리즈에서 비극을 정쟁의 소재로 삼기보다 우측 통행 등 기초 질서와 불법 주정차, 법안 통과 고작 1건 등을 지적하는 팩트 위주의 담담한 논조를 유지해 좋았다. 이런 문제 제기가 어떻게 제도와 정책으로 구현되는지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인력난]
-<사람이 없다>(10월 28일 자 A1·4·5면)는 건설 현장이나 식당 등지에서 구인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었는데, 그 원인 진단 부분이 아쉽다. 노동인구 감소가 주요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일할 생각이 없거나 힘든 일을 기피하는 청년이 증가한다거나 실업급여가 지나치게 후하다는 지적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이는 임금 수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최저임금이 대부분의 일용직 또는 비정규직 근로의 ‘하한값’이 아니라 ‘고정값’이 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전청조 사건으로 소환한 역대 여성 사기범들>(11월 4일 자 아무튼 주말 B3면)은 국내외 여성 사기꾼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런데 이들 사례에서 범죄 유형의 일관성이 없고, 통계상으로도 사기 등에 남성 범죄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사기 등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유죄 확정 범죄자 중 여성 비율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다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이런 기사는 남성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지만 자칫 여성 독자를 화나게 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평생 국가에 헌신... 경찰견 럭키, 눈물의 장례식>(10월 21일 자 A10면)은 폭발물 등을 탐지하는 데 기여한 경찰견 장례식을 다루었다. 하지만 8년 동안 근무하다 병사한 경찰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큰 지면을 할애하고, 큰 사진을 싣는 게 과연 타당한가. 그동안 조선일보에서 재난 구조나 소방 활동 중 고귀한 생명을 잃고 순직한 공무원들 소식은 어떻게 전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경제 엔진]
-<한국 경제의 ‘뉴 엔진’> 시리즈는 선진국과 경쟁 중인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탐색하는 장기 기획이다. 전문가들을 동원해 “더 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된다” 식으로 지면을 구성한 게 돋보인다. 단, 최근 방산(防産)을 다룬 <신냉전이 부른 30년 만의 무기 호황... ’육해공 3박자’ K방산 각광>(11월 8일 자 A5면) 등은 찬사와 장밋빛 전망 일변도인 것 같아 조금 아쉽다. 현 방산을 첨단 기술 산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국제 상황에 따라 무기 수요가 변하기 때문에 미래 먹거리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AI가 초래할 위험 막자” 세계 28국 첫 공동선언>(11월 3일 자 A1면)에서 다룬 바와 같이 AI는 축복과 재앙을 함께 지닌 양날의 검이다. 가장 우려되는 일은 AI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있다. 유튜브, SNS 등으로 우리는 이미 극단적인 정치적 편향에 빠져 있는데, 여기에 AI가 가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는 왜 이러한 편향을 가속시키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등을 치밀한 기획을 통해 제시하면 좋겠다. 조선일보는 각종 AI 소식을 전달하는 것 이외에 한두 분야에 대해서는 집중 기획을 통해 변화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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