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함·상처·부끄러움…진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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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병풍' 노릇에 머물기에 측은하게 여겼던 등장인물 다음 작품에 가서는 아주 중요한 주인공으로 바뀐다.
이 단편소설에서 정의를 외치며 타인을 비판하던 사람을 그다음 단편소설에 가서 만났는데, 알고 봤더니 속물이다.
작가는 불륜 목격담의 도마에 오른 한 여성이 그렇게 된 데는 '점잖고 교양 있는' 한 이웃이 준 큰 상처가 작용했음을 폭로한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읽어갈수록 등장인물을 알아가고 이야기와 친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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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소설집 연작 단편 6편 수록
- 험담·불륜 등 이야기 그려내
이 작품에서 ‘병풍’ 노릇에 머물기에 측은하게 여겼던 등장인물 다음 작품에 가서는 아주 중요한 주인공으로 바뀐다. 이 단편소설에서 정의를 외치며 타인을 비판하던 사람을 그다음 단편소설에 가서 만났는데, 알고 봤더니 속물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주요 인물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왜냐? 이웃이니까. 이웃은 지켜보고 있다. 나도 이웃을 지켜본다.
여기서 질문이 튀어나온다. 과연 우리는 이웃을 ‘잘’ 알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괜찮은 사람일까? 사람이란 왜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초라한 존재인 걸까?
소설가 진하리의 첫 소설집 ‘이웃들’의 얼개를 살펴보자. 엄청난 고급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파트 촌의 중산층 부부 여러 쌍이 나온다. 수록 작품 ‘야외수업’ 속 태미는 전시도 몇 번 연 화가 출신 미술 강사이다. 아이를 사산한 상처를 지닌 채 살지만, 태미는 성실하고 교양 있다. 이웃의 해준 엄마는 “기분이 좋을 때면 영어를 더 많이 섞어 쓰는” 수다스럽기만 한 아줌마다. 소설에서 익명의 허위 폭로 글을 올리거나 “걔 엄마가 계모래요” 같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식의 ‘천박한’ 짓을 하는 사람은 누굴까? 놀랍게도, 해준 엄마는 아니다.
두 번째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이웃들’은 이웃에 사는 부부 세 쌍이 아파트 촌 치킨집에서 닭과 맥주를 먹으며 담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치킨 집 장면에 나오는 부부를 잘 봐두어야 한다. 비중을 달리하면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태하 아빠가 게임을 제안한다. ‘본 것만 말하기’이다. 의견 배제, 추리 금물, 본 것만 말하기. 그렇게 게임의 뚜껑을 열고 보니, 타인의 불륜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작가는 불륜 목격담의 도마에 오른 한 여성이 그렇게 된 데는 ‘점잖고 교양 있는’ 한 이웃이 준 큰 상처가 작용했음을 폭로한다.
‘이웃들’에는 단편소설 6편이 실렸다. 수록작을 읽어가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느낀다. 갈수록 재미있어진다는 점이다. 수록된 작품은 연작 소설이다. 작품이 서로 긴밀히 연관돼 줄곧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읽어갈수록 등장인물을 알아가고 이야기와 친숙해진다. 연작 소설의 매력이 여기 있다.
작가 진하리는 소설집 ‘이웃들’에서 삶의 진실을 생기 있게 보여준다. 그것이 문학이 할 일이다. 오늘은 내가 영웅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내일은 스캔들의 주동자가 되어 나락으로 갈 수 있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해피버스데이’와 ‘향기롭고 쌉쌀한’에 나오는 한나의 모습이 달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다. 우리 사는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재미있는 연작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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