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Who am I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쓴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미제라블’이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비참함’ 또는 ‘비참한 것(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여러 미디어로 재창작됐고 특히 1980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뮤지컬이다.
작품 1부에서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미혼모(팡틴)를 시기와 질투 속에 일하는 공장에서 쫓아낸 것은 다름 아닌 같은 공장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우리가 너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쫓겨난 여인은 결국 사회의 어두운 바닥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이 작품을 읽고 보고 들으며 필자가 느낀 가장 비참함은 작품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투쟁이 더 비참한 것은 이른바 ‘갑’(甲)과 ’을’(乙)의 싸움이 아닌 ‘을’끼리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1부의 끝에 나오는 곡의 제목이 “Who am I?”(나는 누구인가?)라는 곡이다. 가석방 기간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성공한 사업가이자 시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주인공 장발장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며 부르는 노래다.
정직함과 자신이 지금까지 거짓 신분으로 이뤄 온 삶의 성과들 사이에서 장발장은 고뇌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How can I ever face myself again? My soul belongs to God, I know. I made that bargain long ago. He gave me hope, when hope was gone He gave me strength to journey on. (어떻게 내가 다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까? 내 영혼은 신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오래전에 다짐을 했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희망을 주셨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분은 나에게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재판정에 나가 자신이 장발장이고 죄수번호 ‘24601’이라고 외치며 자백한다.
장발장이 이렇게 정직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19년간이나 가둔 감옥과 무거운 세상의 법이 아닌 그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따뜻한 마음을 베푼 미리엘 주교의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아홉 가지의 덕성을 열매에 비유해 말했다. 그러고는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습다”고 결론짓는다.
존재 투쟁의 장이 돼 버린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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