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형 판매시설 아무 곳에나 적재물, 화재 시 피해 커질 수밖에
비상구는 생명의 문이다. 화재나 지진 등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경우 신속히 대피할 수 있게 마련한 출입구다. 비상구가 폐쇄돼 있거나 주변에 물건을 잔뜩 쌓아놓으면 사고가 날 때 대피가 어려워 인명 피해가 커진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선 창고가 아닌 통로나 지하주차장 등에 물건을 잔뜩 쌓아 놓고 있는데 이 또한 화재시 상당히 위험하다.
2017년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사우나실 내부의 비상구 폐쇄로 인해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9월 7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대전 현대아울렛의 지하주차장 화재도 적재물 방치가 화를 키웠다. 전기차 충전소 주변에 화재 위험성을 키울 박스와 갖가지 적재물이 오랫동안 방치돼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구 폐쇄나 그 주변의 각종 적재물은 비상사태 시 통행이 어려워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대형마트의 통로나 주차장의 무분별한 물건 적재도 마찬가지다. 소방당국이 지속적인 계도와 점검을 하지만 낮은 안전의식과 무관심 등으로 크고 작은 비슷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백화점, 대형마트 등 경기도내 대형 판매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모두 754건이다. 판매시설에서 불이 난 건수가 한달에 20여회에 달한다. 올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총 184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본보 기자가 도내 대형 판매시설의 적재물 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안양시 범개동의 한 아울렛은 1층 물류창고 옆에서 지하주차장 입구까지 수백 개의 상자가 쌓여 있었다. 창고 밖에 ‘적재 금지’라는 표지판이 4개 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소화기까지 가렸다. 수원시 권선동의 한 대형마트 역시 주차장 출구부터 물류창고 앞까지 식품, 가전제품 등 수십 개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대형 판매시설들이 정해진 공간이 아닌 곳에 물류를 적재하는 사례가 많아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화재가 나서 쌓아둔 상자에 불이라도 붙으면 더 큰 불로 번질 수 있어 물류 보관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방당국이 소방시설법에 따라 매년 종합 정밀점검을 하고 있지만 물류 적치에 대한 단속은 이뤄지지 않는다. 물건 적치의 경우 고정시설이 아닌 이동 가능한 물품이어서 그 자체가 소방법 위반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재 발생 시 화재를 더욱 키울 위험성이 있고 피난로에 장애가 될 수 있는데도 안일하고 소홀하다. 관련법 보완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점검, 계도, 단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해당 점포들이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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