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광화문 광장을 지나며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3. 11. 1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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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거리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원래는 넓은 거리만 있던 것이 중앙에 광장이 조성되고 광장이 이리저리 옮겨지며 모양이 바뀌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광화문 거리는 광장이 됐고 정권에 따라 모양이 계속 바뀌었으며 어떤 권력자는 공사한다는 명목으로 광장을 닫았다.

광화문 광장의 깃발은 언제까지 나부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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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광화문 거리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첫 직장도 광화문 거리에 있었고 현재도 광화문 거리에서 일한다. 원래는 넓은 거리만 있던 것이 중앙에 광장이 조성되고 광장이 이리저리 옮겨지며 모양이 바뀌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만 대로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이젠 세종대왕 동상까지 생겼다. 나무를 심고 지하로 연결되는 넓은 경사면도 만들어졌다. 광화문 거리는 언제부터인가 태극기, 성조기가 나부끼고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가끔은 무지개색 깃발이 나부끼게 됐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멀리까지 쩌렁쩌렁 확성기 소리가 울린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이러한 식의 '참여'가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 이것이 진짜 '참여'인가. 과거엔 '광장'이라는 단어는 '밀실'의 반대말로 좋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광장에 공포감이 생긴다. 이제는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오히려 닫힌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현대 민주주의는 광장과 어울릴 수 없다. 광장은 밀실과 마찬가지로 현대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광장은 밀실과 친구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고대 그리스 국가들은 소수의 시민이 모두 모여 논의를 할 수 있었다. 참여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사이즈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사이즈가 1000만명 단위고 아주 작은 나라도 몇백만 명이 넘는다. 미국 같은 나라는 3억명 이상이다. 심사숙고하면서 논의를 하는 '숙의'(熟議)는 바라지도 않고 1000만명(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1)이 한자리에 모여 짧게 1분씩만 발언해도 모두 한마디하는데 16만6667시간, 즉 19년이 걸린다.

하나의 안건을 놓고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가 단 1분씩 한마디하는 데만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참여민주주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소수가 발언하고 광장에 모인 군중은 박수를 치거나 야유를 하는 등 '찬반'만 표시할 수 있을 뿐이다. 100만명이 모인 집회에서 대단히 심오한 논의를 한 적이 있던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던가. 100만명이 모여 위세를 과시하는 '시위'(示威)는 가능했지만 '숙의'가 이뤄진 적이 있던가. 또 광장의 정치 뒤에는 밀실의 정치가 있는 경우가 많다. 밀실에서 결정되면 그것이 광장에서 군중을 만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광화문 거리는 광장이 됐고 정권에 따라 모양이 계속 바뀌었으며 어떤 권력자는 공사한다는 명목으로 광장을 닫았다.

이젠 광장의 정치에서 공회당(公會堂)의 정치로 옮겨가야 한다. 참여민주주의는 함께 모여 '숙의'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주민자치' 공동체에서나 가능할 뿐이며 전국 단위의 논의는 대표자를 선출해 대신 논의하도록 하는 '대의제'로 진행돼야 한다. 우린 막강한 대통령제를 갖고 있기에 정치가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는 보이지 않는 밀실에서 측근과 논의한다. 그리고 이 밀실은 광장의 정치로 이어진다. 밀실은 광장의 친구다. 대표자들이 공회당에 모여 이 나라의 중대사를 '숙의'하게 된다면 밀실과 광장은 역할이 줄어들 것이다. 광화문 광장의 깃발은 언제까지 나부낄까. 박수와 야유만 있는 2차원의 정치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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