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가스등(gaslighting) 아래의 슬픈 신(god)
흔히 사용하는 용어 ‘가스라이팅’ 연극 ‘가스등’서 유래
인간관계 속 심리적 지배·복종 사이 폭력적 관계 드러나
친밀도 높고 집단일수록 ‘가스라이팅’ 더욱 파괴적 양상
스스로 신임을 주장하는 ‘그들’과 ‘종교’는 여전히 건재
가스등 아래 인간 세상 내려다 볼 ‘진짜 신’도 슬퍼할 것
“가스라이팅(gaslighting)”. 영국의 오래된 연극 ‘가스등(Gaslight)’(패트릭 해밀턴 연출, 1938)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해, 종교, 문화, 범죄, 심리, 교육 등의 전 영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연극 ‘가스등’에는 자신의 범죄 행위를 감추기 위한 남편 잭이 아내 벨라에게 거짓말을 하고, 결국 아내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하는 심리적 지배와 학대의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후 영화로 제작된 ‘가스등(Gaslight)’(1944)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스스로 의심하고, 남편에게 과의존하게 되는 파괴적 과정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게 된 아내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 타인에게 과의존적 태도를 갖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취약해져가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 관계 속의 심리적 지배와 복종, 그 사이의 폭력적 관계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친밀도가 높은 관계, 집단일수록 가스라이팅은 더욱 파괴적으로 나타난다.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시작하여, 그 사이에 위계가 생겨나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폭력성은 여지없이 그들의 얼굴을 내민다.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나는 신이다’(넷플릭스, 2023)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지만, 스스로 ‘신(神)’임을 주장하는 ‘그들’과 그 종교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특히 신-인간이 수직적 구도를 가진 종교의 영역에서, 이러한 심리적 지배는 더욱 폭력적으로 드러난다. 소위 ‘신의 대리인’의 위치를 자처한 종교인들은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전달자에서 시작하여, 드디어 스스로 신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는 종교적 심성, 영적인 호기심을 적극 이용한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트윈 플레임을 탈출하라(Escaping Twin Flames)’(넷플릭스, 2023)는 일종의 신생 종교인 ‘트윈 플레임 유니버스(Twin Flame Universe)’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모임의 리더인 제프(Jeff) 역시 모임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예외 없이 ‘재림 예수’를 자처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그는 스스로‘재림 예수’를 주장하지만, 거룩하고 검소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10만 달러 짜리 포르셰를 타고, 그의 트윈 플레임은 샤넬을 입는다는 점에서 2000년 전의 예수와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임 역시 여전히 건재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매 컷은 사람들의 감정, 열망, 믿음으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모임에는 ‘영적인 힘’,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자신의 쌍둥이 영혼, 반짝거리는 쌍둥이 불꽃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그럴듯한 말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외롭고 공허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며 평화의 공동체가 형성되는가 싶지만, 사람들의 관계에는 서서히 위계가 형성되고 파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영원한 사랑, 영혼의 반쪽을 찾고 싶다는 순수한 갈망이 있었을 뿐이다. 사랑, 마음, 영혼… 눈에는 보이지 않고 다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신의 계시’를 통해 ‘운명’으로 전환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강제한다.
타고난 성별을 전환하라는 기괴한 계시 앞에서도, 사람들은 그것이 ‘온전한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운명’일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탈퇴자들의 증언은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 폭력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신을 만들었을까?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겠지만, 고도로 발달한 A.I가 만들어진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은 과학기술만큼이나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 인간의 지적 능력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누구나 갈망, 소망, 욕구를 갖고 살아간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갈망, 불안과 공허, 절망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열망들이 끝없이 부유한다.
가스라이팅 아래에서 헤매는 사람들. 그들은 ‘피해자’ 등으로 불리지만, 그들의 불행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기가 그 시작점이 되었을 것이다. 험난한 세상에 지친 그들에게 서로의 위로가 있었고, 연대가 있었을 것이며, 영원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천국이 기다린다는 불멸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평화로운 관계를 바라고, 사랑을 갈구하며, 고통에 찬 세상에서 벗어나 낙원을 바랐던 사람들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여전히 진행되고 있을 파국적 상황은 연극 제목인 ‘가스라이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캄캄한 밤의 유일한 빛이었던 ‘가스등’, 가스등은 아무런 감정도 표정도 없다. 가스등을 어루만지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만이 요란하게 날뛰고 있을 뿐이다.
고요히 점등된 가스등 아래서 인간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짜 신(神), 신도 슬퍼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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