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잃고 지혜 얻은 크로이소스, 그의 삶은 비극인가[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의 경고
크로이소스는 기가 찼다. 하지만 솔론은 감언이설로 헛된 희망을 부추겨 권력자를 미혹하는 점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어떤 현자도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현자’였으니까. 그런 현자가 자만에 빠진 왕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인생의 불확실함과 우연성에 대한 경고뿐이었다. 그런 경고가 예언이 되리라는 사실은 아마 솔론 자신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페르시아 원정, 과신이 몰락 불러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크로이소스는 두 해 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 깊은 슬픔에서 그를 끌어낸 것은 페르시아 제국의 위협이었다. 두 제국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운명이었다. 크로이소스의 리디아가 소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을 무렵 동쪽에서는 키로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고 세력을 넓혀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패기만만한 동방의 제국이 서쪽의 왕국들을 정복해 가는 ‘동세서점’의 형국이었다.
물론 크로이소스는 두려움에 떨며 전쟁을 회피할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더 커지기 전에 선제공격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진 크로이소스는 결정을 내리기 전 신탁에 조회했다. 그는 영험하기로 소문난 델포이 신탁소에 사절을 보내 개전 여부에 대해 물었다. “크로이소스가 강을 건너면 큰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신탁이 지목한 강은 리디아의 동쪽 국경을 흐르는 할리스강이었다. 신탁을 들은 크로이소스는 주저 없이 강을 건너 전쟁에 나섰다. 신탁이 예언한 ‘큰 나라’가 어디인지 되묻지 않은 채….
그런 과신이 몰락을 불렀다. 처음에 크로이소스는 승리하는 것 같았다. 페르시아 제국의 도시를 함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로이소스와 그의 동맹군들은 키로스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르데이스가 함락되고 왕은 포로로 잡혔다. 또 어떤 우연이 추락한 왕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헤로도토스는 다시 솔론과의 대화를 상기시키는 일화로 돌아간다. 키로스 앞에 화형장이 준비되고 크로이소스가 그 위에 올랐다. 그런데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그가 세 번 외쳤다. ‘솔론! 솔론! 솔론!’ 느닷없는 외침에 키로스도 궁금해졌다. 그는 사정을 알아보게 했고, 통역이 자초지종을 전하자 마음을 바꿔 화형을 중지시켰다. “그는 자신도 인간이면서 자신 못지않게 유복했던 다른 인간을 산 채로 불태우려 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응보가 두려웠고 인간사에서는 그 어느 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로스는 크로이소스의 운명이 곧 자신의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솔론의 지혜가 결국 두 제국의 왕을 살려낸 셈이다.
잘 풀릴 때 최악을 대비해야
그리스인들은 바다에서 인생을 배웠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거친 바다를 건너지만 항해 중 어떤 일이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던 그리스인들에게는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인간이 대비할 수 있는 것과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었다. 변덕스러운 바다에서 배의 돛과 닻줄을 튼튼히 하고 키를 올바른 방향에 맞추는 것 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자들이 행운에서도, 역경에서도 변함없는 삶의 태도를 윤리적 삶의 이상으로 여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크로이소스 이야기 속 반전은 끝나지 않았다. 키로스의 가신이 된 크로이소스는 왕이 이웃 나라와의 전쟁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런 조언으로 그를 도왔다고 한다. “전하와 전하께서 지배하는 다른 자들이 모두 한낱 인간이라는 점을 알고 계신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지사(人間之事)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어서 같은 사람이 계속 행운을 누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통촉하시옵소서.” 권력과 부가 주지 못했던 지혜를 크로이소스는 추락을 통해서 얻었다. 그의 삶은 비극적인가?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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