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야[관계의 재발견/고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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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했던 가을도 잠시, 입동을 지나자 매서운 한파가 몰려왔다.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불렀다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저물어 가는 11월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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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나온 책을 품에 안고 하원하는 아이들을 기다렸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나무마다 나뭇잎을 떨구고 있었다. 매서운 날씨에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했다. 아이들을 만났을 때, 찬 바람에 얼어붙은 내 손을 맞잡은 아이가 말했다. “엄마 손이 얼음 같아. 녹여줘야겠다.” 입김을 불어주었다. 호오. 손등에 닿는 여린 온기를 느끼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억해야지. 이 사랑을 기억해야지. 이런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끝내 얼어붙지 않도록 기어코 내 삶을 데워준다.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불렀다지. 마음이 11월 같을 때, 비바람에 나뒹구는 나뭇잎처럼 세상에서 홀로 춥고 쓸쓸하다 느낀다면, 사람의 입김 같은 이야기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살아온 시간 가운데, 우리를 살게 한 좋은 기억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저물어 가는 11월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읊조린다. 우린 이미 사랑을 알고 있다. 내가 가진 사랑은 내가 경험한 세상의 모든 것, 애써 마음에 담아보려 노력한 만큼만 담을 수 있는 것. 어느새 이불처럼 거리를 폭닥 덮어버린 플라타너스 낙엽 위를 걸으며 나는 사랑을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대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야. 여전히 우리 안에는 선명한 사랑이 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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