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차별·혐오 맞서 싸우는 ‘후세 다쓰지’의 후예들

2023. 11. 1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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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ZAK)의 초대를 받아 학술 토론회와 그 뒤풀이에 참여하게 됐다. 도쿄에서 ‘객원 연구원’이라는 타이틀로 지내고 있지만, 변변찮은 일본어 실력 때문에 매일 ‘듣기, 말하기 시험’을 치르는 양 스트레스를 받던 차였다. ‘오래간만에 귀를 편하게 하고, 입도 좀 풀 수 있겠군’ 하며, 기쁜 마음으로 회합 장소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서른 명 이상 모인 재일 동포 3세 변호사 중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는 겨우 서너 명이었다. 나머지는 사실상 일본어가 모국어나 다름없었다. ‘김영철’, ‘송혜연’처럼 친숙한 이름을 가진 이와 우리말로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앞으로도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술잔을 부딪치며 더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누어 보니, 은근한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그와 같은 우리식 이름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현 광주고법 판사 (일본 도쿄대학 객원 연구원)
그런 그들 중엔 이름부터가 생소한 일본인 변호사도 한 명 섞여 있었다. 모임 당일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마주 앉아 즐겁게 이야기 나눈 것뿐이었지만 나중에 그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게 된 뒤로부터 나는, ‘간바라 하지메(神原元)’라는 그 이름을, 도쿄에 있는 나뿐만 아니라, 고국의 동포들이 두고두고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간바라 변호사의 X(옛 트위터) 계정(@kambara7) 첫 페이지에는 ‘후세 다쓰지’의 사진과 좌우명(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이 고정 글로 걸려 있다. 일본 변호사였던 후세 다쓰지의 ‘민중’은 단지 일본인들만은 아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보편적 정의의 관점에서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재판이 열리면 앞장서 그들을 변호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불법이므로 그에 맞서는 투쟁은 정당하다는 논지였다. 사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최초의 일본인이 되었다.

간바라 변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야말로 우리 일본인의 진정한 영웅이다”라고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간바라 변호사가 해 온 일들을 보면 그는 진정한 후세 다쓰지의 후예가 아닌가 싶다.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는 ‘후레아이(만남)관’이라는 다민족 교류 시설이 있다. 간바라 변호사는, 일본 극우 세력들의 표적이 된 최강이자 후레아이관장의 소송대리인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발언을 한 극우 차별주의자 일본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지난달 12일 요코하마지방재판소 가와사키지부는 위 발언의 위법성과 최강이자씨의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여, 극우 차별주의자 일본인으로 하여금 최강이자씨에게 194만엔(약 1700만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표현은 그동안 일본 극우 세력이 일본 내 혐오표현 관련 규제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문장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여기에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차별 의식을 드러내는 혐오표현들이 난무했지만,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 해소 법(2016년 시행)’이 제정되고, 오사카부(신상 공개)와 가와사키시(벌금형) 등에서 조례에 의한 헤이트 스피치 제재 수단이 만들어지면서, 이를 우회하기 위해 고심 끝에 찾아냈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는 재일 동포들로서는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만으로도 큰 상처가 되고, 거기에 내포된 차별 의식과 혐오에 적잖은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간바라 변호사 등 소송대리인단은 일본의 사법부를 상대로 그와 같은 맥락을 잘 변론함으로써, “조국으로 돌아가라”라는 발언이 심각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을 법원의 판결로 인정받아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 판결을 두고 극우 차별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푸념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재일 동포들의 기나긴 ‘헤이트 스피치’ 대응 투쟁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간바라 변호사는 그동안 이른바 ‘재특회’ 등 극우 차별주의자들이 가와사키 사쿠라모토(재일 동포 밀집 지역)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벌인 혐오 시위에 실력 행사로 맞서는 ‘시바키부대(혼내는 부대)’를 조직해 이끌어 왔다. 또한 재일 동포 3세 변호사들과 함께 각종 가처분과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받아냄으로써, 경솔하게 입을 놀린 극우 차별주의자들을 끝까지 뒤쫓아 법적 책임을 물었다.

잇단 패소 판결에 잔뜩 약이 오른 극우 차별주의자들이 간바라 변호사와 그 동료들을 괴롭힐 생각으로 소속 변호사회에 무더기 징계 청구를 했다가, 오히려 업무방해로 피소돼 또다시 손해배상 판결서를 받아들고 낙담했다는 일화도 있다. 싸우는 방법을 아는 그들의 끈질긴 투쟁은 일본 최초로 혐오 발언을 반복한 이가 벌금형으로 처벌받도록 하는 가와사키시 조례로 결실을 맺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 정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해야 할 일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영웅이자 대한민국 건국 유공자인 후세 다쓰지의 정신이라면, 일본에는 여전히 그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간바라 변호사와 그 동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내 나라 대한민국에는 민족적·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들의 보편적 인권을 위해 함께 싸우는 후세 다쓰지의 후예들이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차기현 광주고법 판사 (일본 도쿄대학 객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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