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할매 바람났다고? 글 배우러 간다”...경북 문해 한마당 열려
외국인 며느리 한글 선생되기도
집안 사정과 시대적 여건으로 한글을 늦게 배운 할머니들이 만든 시화(詩畵) 63점이 경북도청에 전시된다.
경북도는 16일 안동시 풍천면에 위치한 도청 안민관에서 ‘2023년 경북도 문해한마당’을 개최했다. 경북도 문해한마당은 도내 22개 시군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교육(문해 교육)을 받은 할머니들이 글을 깨우쳐 제작한 시화를 전시하고 시를 낭송하는 행사다. 칠곡 성인문해교실 출신 어르신 8명으로 구성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축하 공연도 진행됐다.
이날 이옥녀(74·경북 봉화) 할머니는 배움의 기쁨을 녹여 쓴 자작시 ‘선생님은 의사’를 낭송했다. 이씨는 “서른 하나에 혼자되서 4남 1녀를 키우느라 도적질 빼고 다해봤다”며 “온 몸이 골병들어 앓다가도 한글 공부하면 행복해진다. 선생님은 골병도 고쳐주는 의사인가보다”라고 했다.
이씨를 비롯해 조태숙(69·경북 안동), 김화점(78·경북 의성) 할머니 등 3명은 대상인 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조씨는 밭일과 공부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갈래 길’이라는 시에서 “돈 벌까 공부할까 머리가 복잡아요(복잡해요). 하루 십만원이면 고등어 사묵고 치마도 살 수 있는데. 밭일은 일땅백, 공부는 잼병(젬병)”이라면서도 “글자 갈쳐줄라고(가르쳐주려고) 애쓰는 선생님 얼굴 몬(못) 잊어 공부가니더(공부하러 갑니다)”라고 썼다. 김씨는 연필로 이름을 예쁘게 쓸 수 있는 날을 고대하는 자작시 ‘김화점’을 썼다.
정순득(75·경북 영주) 할머니 등 3명은 특별상을 수상했다. 정씨는 ‘늦깎이 회장님의 반란’이라는 시에서 “여덟명이 하는 계모임이 이십년이 되었지만 한번도 회장을 한 적이 없다. 눈이 침침해서, 아이가 아파서, 모두 핑계였다. 글을 모르는게 이유였다”며 “문해 학교에서 맞이한 첫 회장 뽑는 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회장할게” 친구들은 박수를 쳤다”라고 썼다. 한글을 배우면서 얻게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한글을 통해 외국인 며느리와 소통하게 됐다는 등의 이색 사연도 있었다. 나계화(경북 영천) 할머니는 ‘며느리의 한글 선생이 되어’에서 “내 며느리는 외국인. 처음에는 서로 벙어리처럼 몸짓으로 소통했지”라면서도 “한 글자 두 글자 배워 가르치며 나는 며느리의 한글 선생이 되었다네. 삐뚤삐뚤한 것은 지나 내나 똑같지만 열심히 하는 며느리 기특하기만 하다네”라고 썼다.
이금선(경북 경주) 할머니는 ‘다 늙어 바람난 시골할매’에서 “논일밭일 다 제쳐두고 새벽마다 버스 기다리는 나를 동네 사람들이 몰래 지켜보고는 “저 할마시 아무래도 바람난 것 같다”며 난리법석이다”라며 “우째야 좋을꼬, 이 나이에 글 배우러 댕긴다는 사실을 알려야하는데 왠지 부끄러워서”라고 한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마을에 퍼진 헛소문을 재치있게 풀어냈다.
이 할머니들은 대부분 70세 이상 어르신들로 유년기에 전쟁과 가난을 겪고, 성인이 되어서는 육아와 살림, 자식 뒷바라지 등을 통해 한글을 배우지 못한 세대다. 그만큼 자음과 모음부터 배우는 한글 교육에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한글 교육 뿐 아니라 스마트폰·키오스크 등 디지털 교육에서도 어르신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신 편”이라고 말했다.
경북도는 16일부터 5일간 도청 로비에서 시화전 수상작 63점과 엽서 56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문해 학습의 성과와 평생 교육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다.
이달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지금이 가장 젊고, 가장 배우기 좋은 때”라며 “도민의 편리하고 행복한 일상을 위한 평생 학습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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