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깎여도 손사래…‘깡통 빌라’의 최후
지난달 법원경매 낙찰률 10% 그쳐
2020년 12월 43.28% 찍고 내리막
강남권 신축 건물도 줄줄이 유찰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채무 떠안고
매도자의 체납액 부담 ‘배보다 배꼽’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면서 입찰 마감시간인 오전 11시10분이 되자 150석 좌석이 절반 이상 찼다. 하지만 대부분 법정 분위기를 익히러 온 초보 투자자거나 대출을 알선해주는 직원들로 실제 입찰에 참여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5개월 전부터 오프라인 경매 강의를 듣고 있다는 A씨(47)는 “수강생들과 다 같이 ‘모의 입찰’을 왔는데 괜찮은 물건이 없다고 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경매가 진행된 44건 중 낙찰된 물건은 단 4개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서울 반포·논현 등 강남권 핵심의 신축 빌라도 줄줄이 유찰됐다.
전세사기·깡통전세 이후 시작된 ‘빌라 포비아’(빌라 기피현상)가 매매시장에 이어 경매시장에도 확산하고 있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매에 넘어온 빌라 매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는 반면, 찾는 사람은 없어 낙찰률(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이 급감하고 있다.
16일 법원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10월 경매가 진행된 서울 빌라(연립·다세대)는 총 1268건이다. 지난해 같은 달(591건)보다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이 중 대항력을 갖춘 선순위 임차인이 살고 있는 물건은 1200건으로, 전체의 94%를 차지했다.
지난달 빌라 낙찰률은 10.60%에 그쳤다. 경매에 올라온 10건 중 1건만 매각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전달(14.0%) 대비 3.4%포인트 떨어진 수치로, 집값 상승기인 2020년 12월 43.28%까지 올랐던 낙찰률은 빌라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리막을 걷고 있다.
경매시장에서 외면받는 빌라들은 ‘깡통전세’가 대부분이다.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매물은 아무리 싸게 낙찰을 받더라도 임차인의 보증금 전액을 낙찰자가 돌려줘야 한다. 즉 실제 매입가는 ‘낙찰가+보증금’이 되는 셈인데, 매매가가 전세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낮은 깡통전세는 낙찰을 받는 것이 손해인 구조다.
2016년 준공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 B다세대주택은 지난해부터 11일까지 8번이나 유찰됐다. 최저 입찰가는 감정가(2억2000만원)의 17% 수준인 3691만원까지 떨어졌다. 인근이 모아타운 후보지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매매 시세가 2억원대 후반까지 오르긴 했지만,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1억7000만원을 내주고 매도자가 체납한 세금까지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매물이다.
강서구 화곡동의 ‘준신축급’ C다세대주택은 19번이나 유찰되면서 최저 입찰가가 감정가(2억1895만원)의 1%대인 394만원까지 떨어졌다.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2억4000만원)이 감정가보다도 높은 전형적인 깡통주택인 데다, 위반건축물 이행강제금까지 내야 한다. 이후 이 건물에 임대를 놓기 위해서는 주거용으로 용도변경하는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낙찰자가 나타날 확률은 희박하다.
경매에 나온 빌라 매물 중에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위변제’한 후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를 넘겨받은 물건도 상당수다.
최근에는 HUG가 대항력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보증금보다 수천만원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낙찰자를 영영 찾지 못하느니, 보증금 일부라도 돌려받겠다는 취지인 셈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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