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이런 식의 투명한 정부는 달갑지 않다

이용욱 기자 2023. 11. 1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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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2월의 일이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후임으로 현명관 마사회장이 내정됐다는 기사가 조선일보 1면에 실렸다. 기자들은 오전 내내 진위 여부를 물었지만 청와대 수석도 비서관들도 입을 닫았다. 청와대의 침묵을 언론이 긍정의 사인으로 해석하려던 차에 ‘현명관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점심 무렵부터 나왔고, 그날 오후 1시쯤 이병기 국정원장이 비서실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후일 사석에서 ‘우리도 몰랐다’고 실토했다. 박근혜 정부의 폐쇄적 국정운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지만 대통령 주변 취재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대통령이 관여하는 인사 취재는 어렵다. 역대 정부에서 개각을 앞두고 흘러나오는 특정 인사 내정설은 틀리는 일이 많았다. 반대편에서 역정보를 흘리기도 했지만, 정부에서 후보자들을 흘려 평판조회를 한 뒤 부적절한 인사들은 걸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질적이다. 인사 문제에 관해선 비밀이 없는 것 같다. 소문은 거의 사실이 됐다. 박민 KBS 사장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설이 지명 몇달 전부터 정보지와 받은 글 등을 통해 번지고 임명까지 이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때 언론장악 논란 등에 휩싸인 이 위원장, 신문기자 출신으로 방송 경력이 전무한 박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올드보이 논란에도 임명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설도 일찌감치 돌았다. 열린 국정이라고 반겨야 할까.

소문은 인사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김일범 당시 의전비서관이 물러났을 때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김승희 선임행정관과 갈등 끝에 밀려났다는 말이 돌았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지만, 김 선임행정관이 의전비서관으로 승진하면서 갈등설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김승희 전 비서관은 딸 학교폭력 의혹으로 사퇴했지만, 김 여사가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소문은 더 번졌다. 검찰 출신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내년 총선 때 영남 등에 출마할 것이란 말이 정권 초부터 돌았는데, 영남 중진의 수도권·험지 출마 압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소문도 현실화될 것 같다.

이런 투명함이 반갑지 않다. 우선 윤석열 정부의 인재풀이 좁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단수 후보를 내정하고, 평판조회도 없이 임명하는 일이 반복되겠는가. 무엇보다 문제 인사들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독단정치, 오기정치를 펴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노골적인 솔직함, 세평을 조금도 반영하지 않는 대통령의 초지일관에 혀를 차게 된다. 민심이 이기나, 아집이 이기나 씨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인사기밀이 있었던 과거 정권이 도리어 민주적이었다는 역설을 깨닫는다.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은 또 어떤가. ‘대통령은 늘 화가 나 있다’ ‘1시간 중 59분을 이야기한다’ 등의 말들은 귓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다. 관저에 초대받았던 여권 인사들이 무용담 말하듯 자랑한 통에 윤 대통령의 술사랑에 대한 몇몇 에피소드들도 퍼졌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는 데 무속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왔는데, 실제 관상·풍수가가 수염을 날리며 대통령 관저가 된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둘러본 사실이 확인됐다. 윤 대통령의 이념전쟁을 두고, 여권 인사들은 ‘뉴라이트 인사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말들이 뜬소문으로 그치기를 바란다. 대통령 주변에서 가십들이 이어지는 것은 정권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윤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국민은 무조건 옳다”며 변화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여전히 ‘가짜뉴스’를 탓하고, 국무회의 생중계를 통해 일방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내리꽂은 박민 사장은 점령군처럼 취임하자마자 몇몇 진행자를 교체하고 대규모 인사를 냈으며, 불공정 보도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래서는 국민의 말을 귀담아듣겠다는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수능이 끝났다. 윤 대통령은 공정성을 해친다며 수능의 ‘킬러 문항’을 문제 삼았는데,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국정을 덜컹거리게 하는 킬러 문항 같은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대통령 주변의 소문들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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