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나무가 똑바로 휘어진 까닭
“어째서 산은 삼각형인가.”(이성복) 산은 그냥 높은 흙덩어리일까. 축구공의 표면처럼 지구가 평평하다면 이 세계가 그 얼마나 평범했을 것인가. 그 넓이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사는 세상의 높이와 깊이가 이만했을까. 어째서 나무는 화살표인가. 저기 저 나무가 비탈에서 세모 모자나 쓰고 산불이나 지키는 단순한 존재일까. 이태백을 하늘에서 귀양온 신선이라 일컫듯, 나무는 지하에서 바깥으로 특파한 파수꾼이 아닐까.
왜 흙은 대단한가. 부드럽게 한 줌 손에 쥐고 흩뿌리는 것, 사탕 하나 깨무는 것처럼 쉬운 일이지만 관찰해 보라. 중용의 한 대목처럼 저 산과 바위를 짊어지고도 하나 무거운 줄을 모르는 대지 아닌가. 그 두터움을 뚫고 나오는 게 나무 아닌가.
여기까지만으로도 나무는 충분히 위대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나무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멀리서 나무를 보면 오로지 나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가지 끝에서 두 갈래로 분지하여 공중으로 진출한다. 대지를 일 획으로 간주하고 일 년에 한 칸씩 허공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니 不’를 거꾸로 쓰는 모습이 아닌가. 바람처럼 들이닥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질문에 아니요, 라고만 대답하는 숲의 거대한 일렁임.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나무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었으니, 낙엽이 얼굴을 때릴 때 떠오르는 시가 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프로스트) 이 시의 급소는 머나먼 인생의 길에서 피할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의 숙명을 짚어내기 때문이 아닌가. 세상이란 잘되기보다는 잘 안되기가 훨씬 수월한 곳. 그리하여 그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행간을 적시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발을 버리고 뿌리를 택한 나무는 다르다. 갈림길을 만들면서도 그 길을 다 품기에 저리도 우아한 삼각형을 얻지 않았겠나.
<어린 왕자>의 소행성 b612에서 뭇별과 나란한 지구를 보면, 나무가 태양을 향해 공중으로 나아가는 게 보인다. 물의 행성인 지구에서 대지를 대표하는 나무. 그리하여 거대한 질량에 의해 휘어진 공간 사이로 나무는 똑바로 휘어져 있지 않겠나.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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