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97) 연세대 신촌캠퍼스 독수리상

기자 2023. 11. 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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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한결같지만, 자본 논리에 지배된 캠퍼스
1971년 연세대 독수리상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2021년 연세대 독수리상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우리나라에는 캠퍼스에 동물 동상이 있는 대학들이 많다. 건국대에 황소가 있다면 연세대에는 독수리가 있다. 연세대 독수리상이 1971년에 세워졌으니, 연세대 신촌캠퍼스가 1885년 지금의 자리에 세워진 것을 감안하면 매우 뒤늦은 일이다.

일제강점기 보성전문 때부터 호랑이가 상징이었던 고려대와 달리 연세대는 상징동물이 없었다. 4·19혁명 이후 자유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던 1960년 가을 연고전을 앞두고 고려대가 대형 호랑이 깃발을 만들어 애드벌룬으로 띄우기로 하자, 연세대는 연세춘추 신문사 편집국장의 제안에 따라 독수리 깃발을 급조했다.

많은 연세대 학생들이 ‘고려대는 벌거벗은 야산이므로 호랑이라면, 연세대는 나무가 울창한 밀림이므로 사자’라는 주장에 공감해 사자를 주장했지만, 연고전 당일 ‘독수리와 호랑이의 대결’이라는 언론 보도가 도배되면서 독수리로 굳어져 버렸다고 한다. 독수리가 연세대의 상징 동물이 되자 1971년 학생들은 700만원을 손수 모금하여 독수리상을 건립했다.

1971년과 2021년의 사진을 비교하면 독수리는 그대로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1971년 사진을 보면 독수리 옆으로 사람이 걸어간다. 이곳은 연세대를 가로지르는 백양로(白楊路)다. 백양로는 중앙이 차도이고 좌우로 인도가 있었다. 백양로는 그저 하나의 길이 아니었다. 해방을 희구하며 청춘을 불사르던 수많은 학생들이 이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1987년 이한열이 쓰러진 곳도 이 백양로였다.

2013년부터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백양로는 차도가 없어지고 녹지와 인도로 재탄생되었다. 백양로 지하에는 ‘백양누리’라는 지하캠퍼스가 생겼다. 2012년 독수리상 보수 작업을 통해 1.5m 높아진 10m 새 주탑이 세워졌고, 기존의 지덕체인(智德體仁) 석상이 옮겨지고 인의예지를 상징하는 새 석상이 주변에 배치되었다. 2015년 백양로가 재개장할 때 독수리상은 사진 뒤에 보이는 중앙도서관 쪽으로 수십미터 이전하여 설치되었고 주변은 광장으로 변모했다. 밤에는 조명을 받아 독수리가 밝게 빛난다.

16일 수능 시험이 치러졌다. “슬기와 기상”을 상징하는 독수리는 한결같지만, 캠퍼스는 삼성, LG, GS, 금호, 대우 등의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즐비한 것만큼이나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자본이 필요로 하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취업전문 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이 이대로 괜찮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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