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군사채널 복원 합의 진전… 수출통제 등 경제 입장차 뚜렷
군사대화 재개 '가드레일' 마련
북핵 대응관련 양측 "입장없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회담 이후 366일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과 취임 후 두번째 대면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은 지난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을 찾은 뒤 6년만에 미국 땅을 밟았다. 이번 회담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0km가량 떨어진 사유지 '파일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열렸다. 캘리포니아 부호의 사유지에서 현재는 '역사적 보존을 위한 국가 트러스트'에 기부된 곳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저택과 함께 중국의 화초들이 곳곳에 장식된 정원이 있어 서구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중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이 도착 직전 회담장 앞 정문 앞에 나와 시 주석을 영접했다. 시 주석은 차량에서 내린 뒤 바이든 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나란히 회담장으로 들어섰으며 별도의 환영 행사는 없었다. 다만 두 정상은 회담장으로 입장하기 직전 나란히 마주 서서 포즈를 취했고 악수를 나누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격자무늬 진회색 넥타이 차림이었고, 시 주석은 특유의 붉은 넥타이를 착용했다.확대 회담장으로 이동한 두 정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각각 핵심 측근들을 자신의 좌우에 대동하고 마주 앉았다.바이든 대통령의 양옆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배석했고, 시 주석의 옆에는 왕이 외교부장이 자리했다. 미국 측에서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된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 니콜라스 번스 주중미국대사 등이 배석했다. 이날 회담은 4시간 넘게 이어졌고 중국 측의 경우 시 주석이 거의 모든 발언을 했다고 고위당국자는 설명했다.
◇군사소통 채널 회복…무력 충돌 방지 '가드레일' 진전
이번 회담에서는 군사 소통 채널 복원, 수출 통제 등 경제 사안, 펜타닐 확산 차단, 책임 있는 인공지능(AI) 개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키워드는 '공통점을 찾고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둔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라고 부를 수 있다.
최대 성과로는 군사 대화 재개 합의와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협력 합의를 꼽을 수 있다. 양국은 군의 고위급 소통,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통화 등을 재개하기로 했다. 또 중국은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기로 했다. 펜타닐은 미국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인 마약성 진통제로 그동안 미국은 중국에 펜타닐 원료 유통 차단 등 협력을 요청해왔다.
중국은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하며 미중간 대화와 협력 채널을 대거 단절했는데 그때 단절 대상으로 포함된 것이 국방부 실무회담과 해상군사안보 협의체 회의, 전구 사령관 간의 통화 등이었다. 당시 중국은 또 양국간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형사사법 협력, 다국적 범죄 퇴치 협력 등과 함께 마약 퇴치 협력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미중 정상의 군대군 대화 재개 및 펜타닐 관련 협력 합의는 양국 관계를 펠로시의 대만 방문 이전으로 돌려놓는 측면이 있다.
여기에 더해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과 나는 위기가 발생하면 전화기를 들고 서로 직접 통화하자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군사 핫라인 수준을 넘어 정상간 핫라인을 만들겠다는 취지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군사대화 재개 합의는 양국 관계의 충돌을 방지하는 '가드레일' 구축의 의미가 있었다. 미중간 군사 및 정상간 핫라인은 결국 남중국해, 대만해협 주변 등에서 양국 군함과 군용기 사이의 신경전이 불시의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막는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의 관리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모두 발언을 통해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시 주석도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 정상 모두 양국이 오해와 오판에 의한 예기치 않은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그것이 군 당국간 채널 복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대만 문제는 '당분간 중대한 현상변경을 말자'로 봉합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뜨거운 감자인 대만 문제와 관련,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시 주석에게 국내적으로 중대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선물'을 줬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 원칙은 유지하되, 향후 수년 안에 대만에 대한 대대적 군사행동에 나설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고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전했다.
결국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기에 미중 갈등의 최대 화약고인 대만과 관련해 당분간은 서로 중대한 현상변경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미중 전략경쟁 본질은 불변…북핵 대응 논의 진전 없는듯
이날 합의는 국운을 건 치열한 전략 경쟁의 본질과 관련된 내용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두발언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의 책임 있는 관리"를 거론한 반면, 시 주석은 "대국간 경쟁은 시대의 대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등 미중전략경쟁을 둘러싼 현저한 인식 차이를 재확인했다.
경제 분야에선 협력보다 입장차가 두드러졌다. 시 주석은 미국이 안보 명목으로 시행한 수출통제와 투자제한 조치 등이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과학기술을 억압하는 것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중국 인민의 발전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일방적 제재를 해제해 중국 기업에 공평하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인 환경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미군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 중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역으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시장경제에 반하는 경제관행, 미국 기업 지식재산권 강탈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언급했지만, 북한의 반복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 등 도발 행위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담은 입장은 이번에 양측 발표에 없었다. 또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부과한 고율 관세 폐지나, 첨단 반도체 장비 등의 대중국 수출 통제 등에 있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간 미중관계가 갈등 일변도 양상 속에 최소한 공조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날 합의들은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어 보인다.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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