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세계...‘케어 이코노미’가 일자리 1억5000만개 만든다
돌봄 필요한 인구 21억명
미국·유럽 요양기업 대기업화
‘케어 테크’ 시장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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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변호사였던 게리 골드숄(83)과 마이러 레벤슨(84)은 2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있는 자택을 떠나 애리조나주 투산에 있는 은퇴자 거주 시설로 이사했다. 게리는 “우리 부부는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들 부부가 자리 잡은 ‘하시엔다 앳 더 캐니언’이라는 은퇴자 거주 시설은 4만㎡(약 1만2000평)의 부지에 300여 가구가 들어서 있다. 매일 2끼 이상 식사가 제공되며, 집안 청소와 세탁도 해준다. 식당•카페는 물론이고 피트니스센터•스파•수영장•미용실•영화관까지 딸려있다. 마치 휴양지의 리조트 같다. 매달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고,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미국에서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라고 부르는 이런 시니어 타운 및 관련 비즈니스는 이미 거대한 산업이 됐다. 미국의 CCRC는 약 2000곳에 달하며 70만명이 살고 있다. 은퇴자들을 보살피는 CCRC 근무 인력은 작년 기준으로 미국 전역에서 87만9700명에 달한다.
미국의 CCRC의 성장세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으로 ‘케어 이코노미(care economy•돌봄 경제)’의 몸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케어 이코노미는 보육•간병•장애 보조•노인 간호 등 모든 형태의 돌봄을 지원하는 유•무급 노동과 서비스를 일컫는다. 어린아이와 장애인을 돌보는 서비스도 포함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실버 케어’를 중심축으로 케어 이코노미가 확대되고 있다.
유엔(UN)에 따르면 세계 케어 이코노미 규모는 11조달러에 달한다. 세계 각국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9%에 해당하는 액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케어 이코노미 규모가 미국에서만 최대 6조달러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미국 GDP의 4분의 1에 육박한다.
케어 이코노미는 특히 많은 돌봄 인력을 필요로 하는 특징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5년 2억600만개이던 전 세계 돌봄 일자리가 2030년에는 3억5800만개로 1만5200만개 늘어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ILO는 회원국들이 사회복지 분야 투자를 두 배로 늘릴 경우에는 2030년 돌봄 일자리가 최대 4억7500만개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돌봄 필요한 세계인 21억명
케어 이코노미 기업들은 ‘고용시장의 큰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가장 큰 CCRC 운영사인 브룩데일시니어리빙은 직원이 3만2900여명에 달한다. 이 회사를 포함해 미국의 상위 1~5위 CCRC의 고용 인원만 11만명에 달한다. 유럽에서 요양병원형 노인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기업 오르페아는 23국에 1156곳의 요양 시설을 두고 있으며, 11만6500명을 보살피고 있다. 오르페아의 직원은 모두 6만8800여 명에 이른다.
오르페아와 함께 유럽 1위를 놓고 경쟁하는 업체 코리앙은 6만4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작년에만 약 5000명을 신규 채용해 유럽 언론들로부터 ‘최고의 고용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유엔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 고용 인구의 6.5%인 2억2500만명이 돌봄 산업 종사자이며, 이후로도 관련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케어 이코노미의 성장은 가속도가 붙고 있다. 세계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 5%대에 불과하던 세계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19년 9%대까지 높아졌다. 이 비율은 2050년에는 16%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인구 6명당 1명꼴이다. 미국에서는 65세 이상 비율이 2013년 13.9%에서 2022년 17.6%로 높아졌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의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60대에 접어든다. 그만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인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미국보다 빠른 유럽에서는 주요국이 이미 65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다. 작년 기준으로 독일(22.1%), 프랑스(21.1%), 이탈리아(23.9%), 스페인(20.2%)까지 EU(유럽 연합)의 ‘빅4′가 모두 초고령사회다.
게다가 중국마저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중국에서 60세 이상 인구가 작년 말 2억8004만명으로 전체의 19.8%에 달했는데, 2035년에는 60세 이상이 4억명을 넘어서며 심각한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전 세계를 보더라도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14% 이상)에 진입하는 데 27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유엔은 내다본다. ILO는 세계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인구를 21억명으로 보고 있다. 세계 인구 4명 중 1명꼴로 돌봄이 필요한 셈이다.
◇미국·유럽 요양기업 대기업화
케어 이코노미가 확산되면서 CCRC와 같은 시니어 타운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예전에 없던 갖가지 특화된 서비스로 고령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하시엔다 앳 더 캐니언’은 나이가 들어 도전하기 어려운 일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현실(VR)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77세 여성 수전 하우드는 직원 도움을 받아 VR을 착용하고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거나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여행지 이야기를 하면 VR로 가보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단일 시니어 타운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플로리다주 ‘더 빌리지’는 부지가 무려 83㎢(2500만평)에 달한다. 50국에서 온 은퇴자 14만5000명이 살고 있다. 골프 코스만 50개 넘게 있을 정도다. 3000개 이상의 동호회가 조직돼 있어 고령자들이 지루할 틈이 없다. 보증금처럼 입소 시 입주비를 목돈으로 내고, 임차료를 포함한 월 서비스 이용료를 별도로 내는 구조다.
미국에서 CCRC에 사는 이들은 평균 44만594달러(약 5억8000만원)를 보증금 성격의 입주비로 내고 월평균 3862달러(약 510만원)씩 낸다. 아직 서민층까지 이용하기에는 가격이 비싸지만 노인들을 돌보는 기업들은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CCRC 운영사 브룩데일시니어리빙은 5만5900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은 28억8000만달러(약 3조8120억원)다. 코로나 팬데믹 전 호황을 누릴 때는 한 해 매출이 50억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1, 2위를 다투는 요양병원형 노인 거주시설인 오르페아와 코리앙의 작년 매출은 각각 46억8100만유로와 45억3400만유로로 둘 다 6조원대였다. 4년 사이 매출 상승률은 오르페아 49%, 코리앙 36%에 달한다.
일본에서도 최대 요양업체 니치이학관 매출액은 최근 5년 사이 매년 2600억엔(약 2조2660억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6년 중국에 진출해 부유층 대상으로 간병 서비스를 시작했다. 돌봄 비즈니스가 이제 수출 품목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 내 2위 업체인 솜포케어는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한 요양 서비스를 강조한다. 요양시설 침실에 정보기술(IT) 기기를 도입해 호흡이나 심박을 측정하고, 노인들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식생활을 조언하고 있다.
케어 이코노미가 거대한 산업이 되고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돌봄 종사자들의 임금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CCRC 운영기업의 관리자 직급은 연평균 13만1554달러(약 1억7400만원)를, 간호 책임자는 11만2603달러를 번다. 노인 생활 관리를 하는 이들은 평균 8만4460달러를 번다. 이는 미국에서 25~64세 학부 졸업자의 평균 연소득(7만4510달러)보다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팬데믹 기간 요양 산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떠나며 인력이 달리자 몸값이 더 높아졌다.
◇똑똑한 ‘케어봇’ 노약자 돕는다
돌봄과 보살핌의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와 ICT 발달이 맞물려 ‘케어 테크’ 시장도 커지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돌봄 로봇’(케어봇)이 노약자의 일상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은퇴 후 미국 플로리다에서 혼자 사는 수전 톨렌(67)은 아침에 일어나면 엘리큐라는 케어봇과 인사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개발한 엘리큐는 “이번 주에 수영장은 가셨나요”라고 묻는 식으로 수전의 일상을 점검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큐는 수전의 체중과 혈압을 기록하고, 약 먹을 시간도 알려준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가족이나 병원에 바로 연락한다. 사회복지사가 해야 할 일을 상당 부분 대신해준다. 수전은 “엘리큐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반려견이나 가족과 마찬가지”라며 “엘리큐와 대화하면 그래도 세상과 연결돼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뉴욕주는 지난해 250달러(약 33만원)인 엘리큐를 혼자 사는 노인 800명에게 제공했다.
신체 능력을 보완하는 ‘웨어러블 로봇’(사람이 몸에 걸치는 형태의 로봇)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리워크는 척수 손상 환자가 똑바로 서고 걷고 돌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고관절과 무릎에 동력을 제공하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스탠퍼드대 생체공학연구소에서 작년에 개발한 보행 부츠는 평소보다 9% 빨리 걸으면서 에너지는 17% 덜 소비하게 도와준다. 간병 인력이 도와주던 일을 간단히 부츠를 신거나 로봇을 입는 행위로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는 헬스케어 로봇 시장 규모가 올해 22억4000만달러가 되고, 10년 뒤인 2033년 117억3000만달러(약 15조5300억원)로 뛸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과 연동한 돌봄 기술도 등장했다. 지난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는 기저귀가 젖으면 스마트폰 알림을 보내주는 스마트기저귀를 개발했다. 기저귀 단면 사이에 센서 4개가 들어 있다. 의사 소통이 어려운 노인의 기저귀를 매번 확인할 필요 없이 알림이 오면 갈아주면 된다.
노인을 상징하는 물건인 지팡이도 똑똑해지고 있다. 스마트지팡이 ‘캔고’는 활동량과 보행 속도를 기록하고, 낙상 사고를 감지해 응급 신고를 해준다. 가격은 299달러. 캔고를 만드는 캔모빌리티의 최고경영자 아마드 알가지는 “많은 노인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이미 쓰고 있는 물건에 기술을 탑재하는 방식을 택했다”며 “보행 패턴을 분석해 낙상을 미리 경고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일찍이 요양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도쿄 외곽에 있는 복지시설 산타페가든힐스에서는 장애인이나 노인 복부에 센서를 부착해, 배뇨와 배변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일부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요양시설에 로봇을 들여오면 대당 10만엔 한도로 비용의 절반을 보조한다.
◇‘케어 푸어’로 생산성 저하 우려
갖가지 신개념 돌봄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아직 비용은 저렴하지 않다. CCRC에서 거주하거나 케어봇을 이용하려면 꽤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나이든 부모를 돌보느라 돈을 벌지 못하거나, 요양 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대느라 허덕이는 ‘케어 푸어’도 포착되고 있다.
미국 여성 베스 로퍼(65)는 알츠하이머병이 있는 남편 덕(67)의 요양원 비용을 대기 위해 보트와 픽업트럭을 최근 처분했다. 딸이 한 달에 500달러씩 보태주지만 그 돈으로는 한 달 5950달러(약 790만원) 드는 요양원 비용을 대기엔 턱도 없다. 베스는 워싱턴포스트에 “결국 은퇴를 포기하고 운동 코치로 계속 돈을 벌지만 6만4000달러인 내 연봉을 꼬박 모아도 요양원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가정 내에서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은 일과 돌봄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고 이것이 임금 손실, 경력 상실, 실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근무 시간 외에 자녀•배우자•노년 가족을 돌보는 데 한 주에 30시간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돌봄 투잡’을 뛰는 것이나 다름없다. 팬데믹 동안 미국인들의 가족 돌봄 부담은 부쩍 커졌고, 엔데믹이 된 이후까지 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9년 총 340억 시간이던 미국인의 간병 시간은 2021년 360억 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간병 비용은 총 4700억달러에서 6000억달러(약 792조원)로 28% 뛰었다.
돌봄 산업이 커지고 발달하고 있음에도 높은 비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접 가족을 돌보는 일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노동 인구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스턴컨설팅은 이러한 돌봄 부담으로 미국 기업이 치르는 생산성 손실 비용이 적어도 연간 171억달러(약 22조5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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