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이재명의 空約?

오철수 선임기자 2023. 11. 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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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선임기자
모처럼 성장담론 화두 띄웠지만
실패한 ‘文정부 재정만능’ 되풀이
진정으로 경제 살릴 생각 있다면
노동 등 규제개혁부터 앞장서야
오철수 선임기자
[서울경제]

657조 원 규모의 내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심사 작업이 시작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3일부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고 예산안에 대한 본격 심사에 들어갔다. 여야는 ‘건전재정’과 ‘확대재정’을 내걸고 벌써 프레임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동안 정책 초점을 분배에 맞춰왔던 야당이 성장 담론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예산안 심사에 앞서 ‘성장률 3% 회복’을 화두로 던졌다. 이 대표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연구개발(R&D)·모태펀드·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와 청년 교통비 지급, 지역화폐 증액 등을 제시했다. 이 대표의 제안 내용은 예산 심사에 임하는 야당의 전략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동안 분배 제일주의를 내세웠던 야당이 성장을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 성장론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걸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경제의 근본이 흔들리는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정부가 소비와 투자를 증대시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진작부터 국민소득까지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가능할까. 지난 5년간 민주당 정부의 성과를 보면 답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소득을 늘려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목표 아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검증도 되지 않은 정책을 펴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5년 동안 편성한 추가경정예산만 151조 원에 달한다. 이 같은 방만한 재정 운용의 영향으로 정부 부채는 2017년 660조 2000억 원에서 2021년 970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말 49.4%까지 치솟았다. 5년 새 13.4%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 상승률(3.4%포인트)의 4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재정을 투입하고서라도 경제가 살아났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규제 개혁은 외면한 채 고용정책을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기업들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로 인해 제조업을 비롯한 제대로 된 일자리는 확 줄었다. 일자리가 줄어드니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은 2.34%에 그쳤다. 이는 이명박 정부(3.34%)나 박근혜 정부(3.03%)보다 훨씬 낮다.

돈은 엄청나게 더 풀었는데 성장률은 왜 추락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 실패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봐야 한다. 이 같은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번 예산안 심사에 임하는 민주당의 방향성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를 살리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오로지 재정에 기댄 경제정책은 성공할 확률이 낮다. 벤처정책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재정이 투입되는 모태펀드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부 주도로 벤처 생태계를 살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00년대 초반처럼 벤처 붐이 일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벤처와 관련된 규제를 확 걷어내 주는 것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경우 온갖 족쇄에 묶여 기업들이 투자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공정거래법상 CVC는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금액은 해외 기업에 투자할 수 없고 부채비율도 200%로 제한돼 있다. 펀드 내 외부 자금 유치도 40%까지만 허용된다. 재계는 벤처 활성화를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을 건의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노동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니 경기가 살아날 리가 있겠는가. 민주당의 성장론이 국민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급속한 고령화로 재정 투입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문제를 오로지 재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일을 더 꼬이게 할 뿐이다. 야당이 진정 경제를 살리려는 생각이 있다면 재정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규제 개혁 등을 통해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것만이 국가도 기업도 국민도 살리는 길이다.

오철수 선임기자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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