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개발도 AI…환자 맞춤 '암백신' 나온다
AI가 바이러스 단백질 분석
백신 개발 속도·경제성 높여
생물학 AI 시장 연 20% 성장
갤럭시 등 스타트업 도전장
"21세기 과학사의 주인공은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AI는 각종 질병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입니다. 단순히 개발 속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기존에 분석이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16일 전남 화순 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에서 개최된 화순국제백신면역치료포럼에서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를 알면 단백질에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물질을 만들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며 "AI를 활용해 단백질 간 상호작용까지 알아내면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발굴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신약 후보물질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직접 실험으로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아미노산이 연결된 단백질 구조를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AI는 짧게는 수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안에 단백질 구조를 정확하게 해독한다.
이 같은 유망성에 이미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대표가 창업한 미국 이소모픽랩스, 슈뢰딩거(SDGR), 제너레이트 바이오메디슨 등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생물학 분야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7400만달러(약 961억원)로 2032년까지 3억6337만달러(약 4722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단백질 구조 및 상호작용 AI 분석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석 교수도 이 경쟁에 참여했다. 20여 년간 연구를 진행해 개발한 '갤럭시'라는 이름의 단백질 구조 및 상호작용 분석 AI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2020년 신약 개발 벤처회사 갤럭스를 창업했다. 석 교수는 "상용화를 위해선 단백질 구조와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관문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날 '미래 백신과 면역 치료를 위한 신기술'을 주제로 열린 화순국제백신면역치료포럼에서는 국내외 석학과 산학연 관계자 1200여 명이 참여해 미래 감염병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암 등 난치병 치료 해결책을 찾는 최신 연구를 공유했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에피백스의 앤 드 그루트 최고경영자(CEO)는 AI를 활용해 만드는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을 소개했다. 암 백신은 암세포가 지니는 암 특이항원을 암 환자에게 투여한 뒤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함으로써 항체 등 몸 안의 면역 기능을 강화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면역 치료제다.
암 특이항원에는 '에피토프'라는 매우 작은 분자구조가 존재한다. 항체는 에피토프의 유도에 따라 항원에 부착된다. 에피토프가 잘 설정돼야 암 백신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루트 CEO는 "암 백신의 효과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에피토프를 얼마나 잘 설정하는지'에 달렸다"며 "AI를 활용하면 암세포에 특이적인 에피토프를 발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환자 암세포까지 AI로 분석하면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에피백스는 이 원리를 활용해 '앤서'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EVT-PCV-001'이라는 이름의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을 개발했으며 1상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그루트 CEO는 "한국 바이오 업체와 협력을 준비 중"이라며 "규모가 큰 한국 기업과 미팅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효과가 좋은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사람의 면역 체계를 '프로파일링(정보 분석)' 하는 일본의 시도도 소개됐다. 일본은 지난해 3월 '선진적 연구개발 전략센터(SCARDA)'를 설립해 20억달러(약 2조원)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다카하시 요시마사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NIID) 신약백신개발연구센터장은 "SCARDA의 전략 중 하나가 사람들의 면역반응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백신과 치료제 설계를 합리적이고 지능적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화순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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