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독한 빈대와의 전쟁,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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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5년.
내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에선 빈대가 재앙 수준으로 퍼져 비상이 걸렸다.
홍콩 역시 빈대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빈대의 디즈니랜드'란 비웃음을 샀다.
빈대만 해도 이미 피레스로이드 계열 살충제에는 저항성을 가지게 됐고, 침구뿐 아니라 전기 콘센트 등으로 은신처를 옮기는 등 갈수록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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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탐지능력 뛰어난 빈대
살충제 저항성 키우며 진화
국제교류 늘면서 전세계 몸살
해충 완전박멸은 비현실적
법정감염병 준한 관리체제로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5년. 미군 소속 국지전연구소(Limited Warfare Laboratory)는 신박한 실험을 시도했다. 당시 미군은 정글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던 베트콩들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에이전트 오렌지 등 고엽제와 군견을 동원했지만 베트콩 섬멸은 쉽지 않은 일. 미군은 빈대의 특별한 능력에 주목한다. 인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나 체온 등을 감지해 먹잇감을 찾는 능력이다. 다른 이점도 많았다. 군견보다 관리도 쉽고 운반도 용이하며 훈련도 필요 없다. 이, 쥐벼룩, 진드기, 모기 등 다른 만만찮은 독한 해충들도 실험 후보군에 포함됐지만 역시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 것은 빈대였다. 하지만 연구진은 빈대들의 반응을 전자기적 신호로 증폭시켜 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까지 성공하진 못했다. 프로젝트는 결국 중단됐다.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브룩 보렐의 책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소개된 일화다.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빈대 일화에서도 나오듯 빈대는 벽을 타고 천장에서 고공낙하해 사람을 공격할 정도로 집요함과 뛰어난 탐지력을 갖고 있다.
빈대는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을 키우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 각지에선 일찌감치 창궐하며 사회문제가 됐다. 내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에선 빈대가 재앙 수준으로 퍼져 비상이 걸렸다. 홍콩 역시 빈대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빈대의 디즈니랜드'란 비웃음을 샀다.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되면서 급격히 늘어난 인적·물적 국제 교류는 빈대들을 글로벌화시켜버렸다.
한국도 1970년대 살충제 DDT로 빈대가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외국인·해외여행이 늘면서 다시 빈대 공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를 출범하고, 12월 8일까지 '빈대 집중 점검 및 방제 기간'으로 정했다. '빈대 제로'를 외치고는 있지만 솔직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2018년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론 밀로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진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까지 야생 포유동물 83%와 식물의 절반을 멸종시켰다. 2019년 '생물 보전' 저널에 실린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독일, 영국,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해마다 곤충 총량이 2.5%씩 줄어들고 있고, 수십 년 내 전 세계 곤충종 40%가 멸종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토록 난폭한 생태계 파괴자인 인간이지만 유독 해충과의 전쟁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빈대는 물론이고 바퀴벌레, 모기 등도 여전히 건재하다. 빈대만 해도 이미 피레스로이드 계열 살충제에는 저항성을 가지게 됐고, 침구뿐 아니라 전기 콘센트 등으로 은신처를 옮기는 등 갈수록 진화 중이다.
찜찜하지만 인류는 해충들과 어느 정도는 공생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가 보다. 빈대 사태 대처도 실현 불가능한 '박멸'이나 '제로'를 내세우기보다는 조기 대응과 확산 방지 등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보인다.
좀 더 조직적인 사회적 방제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첫걸음은 실태 파악이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신고 의무가 없다 보니 실태 파악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진 않지만 빈대의 번식력, 피해자들의 고통 등을 감안하면 법정감염병에 준하는 대응을 검토해볼 시점"이라면서 "신고자에게는 방제 자금을 지원하며 좀 더 적극적으로 신고가 이뤄지도록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승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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