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건' 지시 없다던 국방부, 물증 나와…"지휘책임자, 수사의뢰 아닌 징계로"

2023. 11. 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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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단장-유재은 법무관리관 통화 이후 국방부에서 해병대 사령관에 메시지 보내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과 관련, 해병대 측에 수사 대상 포함‧제외 여부에 대해 지시한 적이 없다던 국방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이 해병대사령관에게 수사 대상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시한 메시지가 확인됐다.

16일 <연합뉴스>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 보고와 경찰 이첩 등의 문제가 불거졌던 8월 초에 이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통해 이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해당 자료에서 박진희 군사보좌관은 8월 1일 오후 12시 6분 김계환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이 7월 30일 이종섭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수사자료를 이첩하겠다고 보고한 뒤에 발신됐다. 이 장관은 이 보고서에 자필로 서명하며 결재를 하기도 했다.

이미 보고가 된 이후 군사보좌관이 이첩 대상을 줄이는 것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김계환 사령관은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도 부하들 전부 살리고 싶은데 아쉽다"라며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박 보좌관이 김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2시간 전인 오전 9시 43분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 간 통화가 있었는데, 박 단장은 유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수사 대상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이를 외압으로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보좌관이 이후 김 사령관에 메시지를 보내며 다시 한 번 수사 대상에 대한 축소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미뤄 보아, 국방부 내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장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상급자인 해병대사령관에게 이를 다시 한 번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메시지 발신과 관련 통신은 박 보좌관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을 사령관님에게 이야기한 것이고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건 전혀 없다"며 "기존에 민간에서 변사 사건이 발생할 때 처리했던 걸 보면 어떤 것은 수사 의뢰하는 것도 있고, 비위사실 통보라고 해서 징계만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해서 사령관님에게 물어봤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수사 대상 축소와 더불어 수사 결과의 경찰 이첩 날짜를 미루려는 시도도 있었다. 박 보좌관은 이날 오전 10시 17분 김 사령관에게 "경찰과 유족 측에 언제쯤 수사 결과를 이첩한다고 했는지요?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보여서요"라고 문의했다.

이에 김 사령관이 "계획된 것은 내일(8월 2일) 오전 10시입니다. 법무관리관실과 이야기하여 국방부 지침을 받을까요? 조만간 이첩이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 보좌관은 "지난번 보고가 중간보고이고, 이첩 전 최종 보고를 해야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즉 7월 30일 해병대 수사단이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한 것을 '중간보고'로 하고, 이후에 별도로 최종 보고가 필요하다며 이첩에 시간을 벌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김 사령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떠났던 이 장관이 돌아오면 이첩 관련 지침을 받겠다면서 이첩을 연기할 경우 "추측성 기사, 외압, 수사 미진 등 보도 예상, 유가족에게도 설명해야 하는데 어려움 있음"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김 사령관은 이처럼 국방부가 수사 대상과 이첩 시기에 대해 문제를 삼았을 때까지만 해도 해병대 수사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국방부의 개입이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후 박 보좌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수사단 수사 결과를 어제와 오늘 다시 확인했는데 문제점 미식별"이라고 답했다. 박정훈 단장의 수사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메시지에서 김 사령관은 "경찰 수사에서 혐의자가 추가·제외될 수도 있는데"라며 "분명한 것은 최초 시작 단계에서 군 수사가 부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공정한 수사만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점"이라고 말해 경찰 이첩은 해병대 수사단이 해병대 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대로 일단 진행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김 사령관은 박정훈 단장에 대해 항명죄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고, 지난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박 단장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 지난 9월 4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가운데, 대령)이 보직해임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청구한 집행정치 신청 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과 박 전 단장의 해병대 동기회 등이 법원 앞에서 박 전 단장을 응원했다. ⓒ연합뉴스

한편 박 보좌관의 메시지에 대해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혐의가 있는 사람은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렇지 않은 분들은 필요한 행정적인, 추가적인 어떤 지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내용)이라면, 지금까지 저희가 계속해 왔던 것과 같은 맥락의 얘기"라며 "문장 그대로를 보셔야 될 것 같다. 이건 해석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가운데 이달 초 이뤄진 하반기 군 장성 인사에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지휘관 중 누구도 징계 또는 징계성 인사 조치를 받지 않은 바 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경우 계급을 유지한 채로 정책 연수길에 올랐고 김계환 사령관 역시 유임됐다. 메시지를 보낸 박 보좌관은 소장으로 진급해 육군 56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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