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질긴 폭력의 인연…안보윤 소설집 '밤은 내가 지킬게'

김용래 2023. 11. 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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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세 번째 단편집…이효석문학상 대상 '애도의 방식' 등 7편 수록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안보윤의 신작 소설집 '밤은 내가 지킬게'(문학동네)에 실린 '애도의 방식'은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폭력 가해자의 죽음을 목격한 피해자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승규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동주는 중학생이 됐어도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무참한 시간을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가해자 승규가 폐건물에서 떨어져 죽는다. 현장엔 승규와 학폭 피해자 동주만 있었기에 동주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승규 엄마는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면서 오랜 시간 동주를 따라다니지만 동주는 계속 침묵을 지킨다. 그런 동주를 두고 사람들은 온갖 소문을 만들어낸다.

"소문 속에서 나는 승규의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승규를 등 뒤에서 힘껏 떼밀기도 했다. (중략) 그만큼 당했으니 동주 걔도 한 번쯤은. 암만 억울해도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누군가는 동조하고 누군가는 비난했다."(92쪽)

스무 살이 된 동주는 고향 버스터미널 안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런 동주에게 승규 엄마는 매일 같이 찾아와 죽음의 진실을 밝히라고 압박한다. 주문한 음식을 먹지도 않고 시위하듯 으깨버린 채 동주를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고깃덩어리를 죄다 으깨놓고 먹지 않는다. 여자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비린 것을 물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96쪽)

모르는 사람이 맞냐는 동료의 채근에 동주는 "몰라요"라며 이런 독백을 덧붙인다.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오랜 시간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의혹에 시달린 것도 모자라, 그 가해자의 엄마에게까지 쫓기는 현실은 잔혹하기만 하다.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윤리적인 시선과 정교한 심리묘사로 다룬 이 작품은 지난 8월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인 이 단편집에는 이 작품을 포함해 큰 고통과 상처를 겪은 이들이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지 그 행로를 섬세한 시선으로 뒤쫓은 단편 총 7편이 담겼다.

어린이집 교사인 '나'와 사고뭉치 언니가 등장하는 표제작은 작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다정함과 배려, 믿음 등의 가치를 곱씹게 만드는 작품이다.

언니는 사이비 집단의 꾐에 넘어가 전세금을 날려버리고 동생 집에 들어와 얹혀사는 신세다. '나'의 연인과도 어느새 친해진 언니는 함께 유기견 봉사를 다니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것도 못마땅하기만 하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언니가 유기견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동안 '나'는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사실에 화가 치민다. 어느 날 언니는 늙고 병든 유기견을 입양하겠다고 선언하고 '나'는 폭발하고 만다.

소설가 안보윤 [이효석문학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기 안의 상냥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등원한 주승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나'는 아이의 몸에서 오랜 학대의 흔적을 찾아내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 일을 계기로 자신에게서 사라졌다고 느낀 돌봄과 배려의 마음을 확인하자 '나'는 비로소 유기견을 보살피는 언니와 연인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언니가 유기견 '밤톨'을 집으로 데려오던 날, 언니는 밤톨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를 떼며 개의 귀에 "밤은 내가 가질게"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병든 개의 이름은 '밤톨'에서 '밤'이 빠진 '토리'(톨이)가 된다.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말은 비단 밤톨에게 뿐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타인과 다른 존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로 읽힌다. '어둡고 무서운 것들(밤)은 내가 가져갈 테니 너는 빛나는 세상에서 따뜻하게 살아라'라는 뜻이 아닐까.

수록작들은 각기 독립된 단편이지만 연작소설 형태로 이어지며 하나의 현실 세계를 이루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령, 단편 '완전한 사과'에는 '애도의 방식'에 나온 동주와 승규의 초등학생 때 모습이 나오고, 또 '완전한 사과'에서 화자의 오빠에게 폭행당하는 여자는 '밤은 내가 가질게'와 '미도'에 나오는 '미도'라는 동일 인물이다.

이런 소설적 장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쇄적 관계가 일종의 거대한 인연의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고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해석했다.

그는 책 말미에 수록된 해설에서 "안보윤의 목소리는 어딘가를 향하여 필사적으로 팔을 뻗는 우리의 외로움을 따스하게 감싸준다. 그는 트라우마의 현장만을 감식하는 조사관이 아니라, 트라우마 이후의 모든 과정을 끝까지 돌보고 보살피는 작가"라고 평했다.

문학동네. 276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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