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방법은 노란봉투법 시행”
산업별 교섭 대신 기업별 교섭이 뿌리내린 한국사회에서 사용자 개념을 넓혀 단체교섭을 촉진하는 것이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과 교섭하는 길을 여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영훈 부경대 법대 교수는 16일 한양대 법학연구소와 노동법연구소 해밀이 연 공동 심포지엄에서 일본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온 흐름을 소개했다. 일본에선 1970년대부터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 개념을 넓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경제불황 속에서 모회사가 자회사 폐업을 빈번하게 결정하고 외주화도 늘어나자 일본 노동운동이 원청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방노동위원회와 하급심 판결이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 개념을 넓게 이해하려고 한 것은 고용안정 등 근로조건 개선을 둘러싼 분쟁의 경우 이를 해결할 실질적 능력이 있는 자와 단체교섭을 통해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흐름은 1995년 아사히방송 사건에 대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로 이어졌다. 최고재판소는 원청인 아사히방송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최고재판소는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노동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 고용주와 부분적일지라도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로 확대했다.
이 판결은 2010년 한국 대법원의 ‘HD현대중공업 판결’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대법원은 하청 노동자들이 비밀리에 노조를 설립하자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이 조합원이 있는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HD현대중공업이 하청 노조의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판단했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노조법 개정안은 2조 사용자 정의 조항에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문장을 담았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는 이 조항이 2010년 대법원 판례에 기초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용노동부는 부당노동행위 중 지배·개입 주체로서의 사용자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부당노동행위 중 단체교섭 거부 포함)는 다르다고 본다. 2010년 대법원 판례는 전자에만 해당하고 후자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성태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토론문에서 “부당노동행위제도인 지배·개입의 주체는 (노조법 2조 개정안이 근거하고 있는) 실질적 지배력설을 긍정할 수 있어도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는 근로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은 일부 교수의 논문 정도”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이 노동개혁의 가장 핵심적 목표라면 기업별 교섭체제의 발본적 개편과 교섭의 촉진·확대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며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 개념 확대를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안이 조속히 시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강사인 강주리 박사는 최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공동 사용자(Joint Employer)’ 판단기준에 대한 규칙을 개정한 것을 소개했다. 새 규칙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복지, 노동시간·근무일정, 업무 배정, 업무수행에 대한 감독, 업무수행 수단·방식 등에 대한 규율·지시, 고용기간·채용·해고, 안전보건과 관련된 노동조건 등 7가지 중 하나 이상을 공동결정하는 경우 공동 사용자로 본다.
강 박사는 “미국에서는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 원청의 ‘지배력’을 중점적으로 고려한다. 원·하청 노동관계의 단체교섭에서 ‘근로계약관계’의 유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단체교섭의무의 사용자성 판단기준을 ‘고용계약’이 아닌 ‘지배관계’로 접근하는 미국의 방법은, 원·하청 노동관계의 실질적인 단체교섭 질서를 형성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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