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름 자세히 보면 주민들의 ‘꿈’이 엿보인다
[서울&]
주민 소망, 지형, 통치이념이 이름 근원
적선동, ‘선 쌓으면 복 온다’는 주역 문구
인의·예지·효제·충신동은 유교의 이념
소공동, 태종 둘째 딸 살았던 데서 유래
마장동, 조선 때 말을 기른 터였던 곳
면목동은 목장과 면해 있다는 의미
작은 고개 아현, 큰 고개 대현동 ‘나란히’
관악구·강남구·은평구엔 모두 신사동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하나이지만 전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사회적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여기서 개별 인간은 각자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원활한 공동체생활이 가능하도록 그들이 사는 대지에도 그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각각의 명칭을 부여해주고 있다. 바로 ‘행정구역’이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들은 온갖 심혈을 기울이며 이름 두 글자 속에 꿈과 희망을 담듯 지명도 이와 유사하다. 하지만 사람의 이름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지명은 개명하지 않는 한 공동체 속에 그대로 존재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성명이 주로 희망을 담는다면 지명은 그곳의 자연적 특징이나 그곳의 역사나 전설을 담아 그것을 후대에 전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그 때문에 당장 자신이 사는 곳의 지명 유래와 그에 얽힌 역사나 전설 등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저 우리의 거주공간을 부동산시세가 아닌 새로운 상상 속에서 바라보는 약간의 여유 있는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이러한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몇 개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먼저 조선의 통치철학을 엿볼 수 있는 지명이다. 종로구 ‘적선동’은 광화문 바로 앞에 있다. 경복궁은 왕의 거처이며, 그 앞으로 현 광화문광장은 ‘육조거리’라 불리며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 육조를 비롯한 각종 관공서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관공서들은 백성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주역> ‘문언전’에서 말하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베푸는 자에게 반드시 경사가 따를 것이다)에서 따온 지명이다.
한편 조선시대 세자가 책봉되면 그를 ‘동궁’이라 부르며 그의 거처인 ‘세자궁’을 경복궁 내 동쪽에 둔다. 세자란 현 임금의 뒤를 이어 떠오르는 태양과 같기에 ‘동녘 동’(東) 자를 접두어로 붙이는 것이다. 이처럼 새 세대를 떠오르는 태양에 빗대는 것은 단지 세자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공부하는 성균관 역시 궁궐의 동쪽에 위치시켰다. 이런 희망을 더욱 강화하고자 성균관이 있는 한양도성 동쪽의 지명 역시 청년이 배워야 할 유교적 덕목인 인의-예지-효제-충신이란 글자를 넣어 지었다. 따라서 종로4가부터 동대문까지의 동명을 인의동, 예지동, 효제동, 충신동으로 지었다.
예컨대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종로5가 광장시장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 배오개시장이란 커다란 시장이 존재했던 곳이다. 이곳 지명이 ‘예지동’인데, 상인들에게 예절과 지혜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도록 이름 지어졌다. 그러니 이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러한 선조들의 희망을 떠올려본다면 더욱 즐거운 나들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편 왕가의 자녀들이 궁을 떠나 살게 되며 지어진 지명도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중구 소공동(小公洞)이다.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가 개국공신 조준의 아들 조대림에게 시집가서 살던 곳으로 속칭 작은공주골이라 하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며 소공동이 됐다. 또 구로구 궁동(宮洞)은 선조의 일곱째 정선옹주가 이곳으로 출가해 살았는데 궁궐과 같이 큰 집이 있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이처럼 궁과 관련된 것 말고도 그곳의 생산물이나 용도에 따라 지어진 지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 양마장 터로 사용되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곳이 성동구 ‘마장동’(馬場洞)이다. 또 장안동과 마주 보는 곳은 목장에 면해 있다 하여 ‘면목동’(面牧洞)이라 지었고, 광진구 자양동은 용마를 낳기 위한 암말들을 키우던 곳이라 하여 ‘암 자’(雌) 자를 써서 자마장리라 부르던 것이 전음되어 지금은 자양동(紫陽洞)으로 쓰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동구 송정동은 수말을 기르던 곳으로 숫마장이라 불리던 것이 오랜 세월 속에 솔마장벌로 바뀌었고, 다시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 전혀 다른 뜻인 송정동(松亭洞)으로 바뀌었다.
한편 지명만 보아도 그곳의 지형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 무척 많다. 예컨대 고개를 뜻하는 현(峴)이나 치(峙) 자가 들어가는 대현동, 대치동, 논현동, 아현동 등이 그렇다. 참고로 충정로에서 마포와 신촌으로 가는 곳에 각각 아현동, 대현동이 있는데 아현동은 작은 고개, 즉 아이고개라 하여 아현동이다. 순우리말로는 애오개이기 때문에 그곳 지하철 역명 역시 애오개역으로 지은 것이다. 한편 이에 비해 신촌으로 넘어가는 길은 큰 고개라 하여 고개의 정점에 해당하는 이대역 일대를 대현동이라 했다.
이렇듯 지명 속에는 역사나 지형 등이 담겨 있는데 이것이 현실 속에서 부정적 의미로 느껴지는 곳이 있어 주민들의 청원으로 전혀 다른 뜻의 한자로 바뀐 곳도 몇 있다. 예컨대 한양도성 내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빠져나가는 문이라 하여 시구문이라 불렸던 광희문 밖은 예로부터 묘가 많았던 곳으로 무당들이 귀신을 모신 신당이 즐비했다. 따라서 ‘귀신 신’(神)을 쓴 신당동(神堂洞)이었던 것이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 또 은평구 증산동은 마을 뒷산이 마치 시루를 엎어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시루뫼’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며 ‘시루 증’(甑) 자를 써서 증산동이라 했다. 하지만 시루는 구멍이 뚫려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이 역시 갑오개혁 때 마을사람들의 청원으로 ‘비단 증’(繒) 자로 바뀌었다.
한편, 동명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소송까지 벌어진 경우도 있다. 그동안 관악구는 신림동, 봉천동, 남현동 등 3개 동으로 구성됐는데 다시 신림동은 11개 동으로, 봉천동은 9개 동으로 각각 번호만 부여된 채 또 나뉘어 있었다. 이에 대해 2008년 각각의 동에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면서 신림4동을 ‘신사동’(紳士洞)으로 개명했다. 이에 대하여 강남구는 자신이 가진 동일 명칭으로 ‘신사동’(新沙洞)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걸었지만 패했다.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같은 발음이지만 그 뜻이 다른 것은 너무도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강남구보다 먼저 ‘신사동’(新寺洞)이란 지명이 있던 은평구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한자조차 같은 동명도 수없이 많다. 행정구역의 중심인 곳이라 하여 ‘중앙동’, 새로 만들어진 동네라 하여 ‘신촌동’, 옛날 향교가 있던 곳이라 하여 ‘교동’ 등은 한자까지 똑같은 지명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다.
글·사진 유영호 <서촌을 걷는다>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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