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 날 살인 사건을 해석하다
[스포티비뉴스=양중진 변호사] 영국에서 아이스하키 경기 도중 한 선수가 상대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목을 베인 후 과다 출혈로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영국 경찰은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가 플레이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이 선수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어떤 보도에는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이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언론사별로 보도마다 차이가 있기는 한데요. 이런보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살인과 과실치사는 완전히 다른 범죄여서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살인죄는 '고의'를 전제로 하는 범죄이고, 과실치사는 '과실'을 바탕으로 하는 범죄입니다.
즉, 가해자가 일부러 피해자를 죽이려고 의도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가 살인죄이지요. 반면에 과실치사죄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이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주의의무를 위반하거나 보호의무를 위반해 결과적으로 죽게 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보도상의 혼란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가장 큰 원인은 영미법상의 살인죄와 우리나라의 살인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영미법상으로는 살인죄를 두 개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모살(謀殺) 또는 중살인(重殺人)이고, 둘째는 고살(故殺) 또는 단순살인(單純殺人)이지요. 모살은 계획적인 살인을 의미한다면, 고살은 우발적인 살인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살인죄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범행의 동기 등을 참작해 계획적인 살인은 우발적인 살인에 비해 더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살인죄를 모살과 고살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형법 제51조에서 양형 참작사유로 정하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유사한 형이 선고될 것입니다.
즉, 사례를 보면 가해자는 우발적인 살인인 고살죄로 기소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살이라고 하더라도 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살인의 고의'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미필적 고의란 '내가 적극적으로 원하지는 않지만 결과가 일어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의 고의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내가 원하는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결과를 원치 않는다'는 정도인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라고 하지요.
사실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구분하는 것은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살인죄는 고의를 전제로 하는 범죄이므로 최소한 미필적이나마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일부 보도처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는 것은 전혀 잘못된 보도라도 볼 수 있지요.
일부 보도에서는 예전에 사례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1992년 이탈리아에서 한 선수가 스케이트 날로 다른 선수의 가슴팍을 쳐 사망하게 한 사건, 2000년 NHL에서 한 선수가 스틱으로 다른 선수의 머리를 때려 뇌진탕을 일으킨 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위
사례들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고의적으로 때린 사건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경기 중에 고의적으로 상대방에게 상해를 가하는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있는데요. 바로 야구에서 일어나는 빈볼(Bean Ball)입니다. 빈볼은 상대 선수의 몸을 향해 일부러 공을 던져 위협을 하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사실 빈볼은 다른 사례에 비해 경기 중에 제법 자주 일어나는 사례인데요. 그럼에도 빈볼로 인해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빈볼을 던져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은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인데요.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상대 선수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져 상대 선수가 사망하거나 장애인이 된다면 형사적으로도 처벌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요. 바로 복싱이나 UFC 같은 격투기 종목입니다. 격투기 종목은 상대방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이므로 항상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왕왕 경기 중 사망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 선수가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종목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도 한데다가 상대 선수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스포츠는 격렬하게 몸을 부딪히는 종목도 있다고 보니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마련인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동업자 정신이고,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 칼럼니스트 소개 -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 변호사 (검사의 대화법, 검사의 스포츠, 검사의 삼국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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