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속 매몰된 작업자를 구조하라"[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②

이연호 2023. 11. 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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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엽 소방관, '터널붕괴사고' 구조임무 수행
무너지는 천장에 10여번 대피와 구조작업 반복
"죽을 수 있겠다…생존자 있어 어쩔 수 없다 생각"
사고 후 한달간 불안증세 시달리며 심리 상담도
[편집자 주]‘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 가량 숨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장진엽 소방관(사진 가운데) 등 충주소방서 소속 구조대원들이 추가적인 낙하물을 막기 위해 A씨 위로 굴삭기 바스켓을 덮어 놓고 A씨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장진엽 소방관 제공.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지난 6월 8일 오후 10시 22분. 충북 충주소방서 장진엽 소방관은 ‘터널 공사 중 천장이 무너지며 사람이 깔렸다’는 신고를 전달 받았다. 최종희 팀장 등 동료 4명과 함께 충주시 직동 37 터널 공사 현장으로 향하는 장 소방관은 평소보다 마음을 더욱 굳게 먹었다. 그의 14년 소방관 생활 동안 터널 붕괴 사고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출동 중 현장 신고자에게서 사고 당시 및 현장 상황부터 파악했다. 구조 대상자는 50대 후반의 남성 A씨였다.

일단 터널은 공사 업체가 약 500미터 길이의 터널 공사 중 350미터 지점까지 굴착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사고는 바로 그 350미터 지점에서 발생했다. A씨는 해당 지점에서 천장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크레인의 바스켓에 올라타고 약 10미터 높이의 반원형 터널 정중앙을 향했다. 그런데 작업 중 천장을 고정하는 앵커 볼트(anchor bolt)가 이탈되며 순식간에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A씨는 바스켓에 탄 채로 지상으로 떨어져 거대한 바위 및 토사물 등에 파묻혔다. 장 소방관은 직감적으로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포함한 구조 대원들까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으로 ‘침착’이라는 주문을 되뇌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구조 대상자인 A씨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A씨는 바스켓 안에서 비스듬히 눕듯이 떨어졌고 큰 바위가 바스켓 상부를 덮쳤으나 바위와 바스켓 사이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A씨는 갖고 있던 레이저 포인터를 그 틈으로 쏴 자신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문제는 터널이었다. 터널 정중앙 천장 붕괴 여파로 터널 양쪽 끝 천장에서도 크고 작은 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현장 소장은 ‘천장을 단단히 고정하는 앵커 볼트가 뽑혀 터널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구조대는 천장을 안정화 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현장 작업자들에게 천장을 받칠 수 있는 장비들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장 소방관은 A씨의 매몰 예상 위치로 가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매우 비좁은 공간 속 바위와 바스켓 구조물 틈에 A씨의 손가락 전체가 끼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천만다행으로 그의 의식은 뚜렷했다.
장진엽 소방관이 토사물이 계속 A씨 기도 부분으로 밀려 들어가자 손으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사진=장진엽 소방관 제공.
그러나 바위에 낀 손가락, 좁은 틈, 토사물, A씨를 감싼 철근 와이어 등은 난관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터널 추가 붕괴 위험이었다. 현장 소장은 터널 벽에 붙어 있는 암석들이 떨어질 기미를 보일 때마다 구조 대원들에게 “얼른 나오세요”라고 소리쳤다. 장 소방관은 수시로 대피하며 구조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0여 번 대피와 구조 작업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을 물었다. 장 소방관은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생존자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러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단 제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고 답했다.

장 소방관의 선택은 최대한 빠른 구조밖엔 없었다. 굴삭기까지 동원해 A씨 매립 위치 상부를 덮어 더이상의 낙하물로 인한 매립을 방지했지만, 그 밖의 중장비 사용은 제한적이었다. 중장비 시동만 걸어도 그 진동으로 천장이 더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굴삭기가 추가적인 낙하물을 막고 나서부터 구조 작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계식 장비를 사용해 바위 구조물을 부양해 A씨 손가락을 빼고, 도르래 장비에 연결한 로프를 이용해 A씨를 막고 있던 철근을 젖혀 그의 탈출로도 확보했다. 이후 누워 있던 A씨의 자세를 수직으로 세우고 안전벨트를 A씨 가슴에 채운 후 그곳에 로프를 연결해 안전 구역으로 무사히 구조했다.

A씨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인근 대형 병원으로 이송됐다. 바스켓과 바위에 낀 손가락 네 개가 모두 부러지긴 했지만 다른 곳의 부상은 경미했다. 바스켓이 만들어 준 공간 덕분이었다.

장 소방관은 그제서야 자신이 구조 활동을 벌였던 그곳이 깊고 어두운 터널 안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 동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봤다. 말 그대로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팀원 간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달았다. 장 소방관을 포함한 일부 구조 대원들은 그러나 그 후 약 한 달 간 불면증 및 불안 증세에 시달리며 심리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장진엽 소방관. 사진=장진엽 소방관 제공.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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