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1저자다] ②"과학자와 의사 택하라면 '과학자'…안정적 환경 중요"

포항=박건희 기자 2023. 11. 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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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노준석 교수 연구실의 김예슬, 김주훈, 김홍윤, 김경태 박사과정생(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포항=박건희 기자

[편집자주] 과학자들의 연구성과는 보통 논문으로 공개됩니다. 연구기관의 책임연구원이나 대학의 교수들이 연구를 주도하는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리지만 논문의 ‘1저자’는 보통 박사후연구원이나 박사급 연구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빛나는 시기 연구에 대한 열정도 가장 뜨거운 이들의 역량은 미래 과학기술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청년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청년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포스텍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청년 과학자들의 꿈과 현실, 미래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룹인터뷰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국내 모든 청년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순 없겠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과학계에서 작지만 힘있는 ‘울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 같은' 물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만드는 물질은 나노미터(nm)급 얇은 렌즈가 될 수도, 유전체의 미세한 신호까지 잡아내는 센서가 될 수도 있다.  메타물질을 연구하는 경북 포항 소재 포스텍 노준석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 연구실 소속 김예슬, 김주훈, 김홍윤, 김경태 박사 (통합)과정생의 이야기다.  

포스텍에서 석·박사 과정을 시작한지 3~4년 차에 접어든 이들은 "좀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연구를 꿈꾸는 '젊은' 과학자들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어린 김홍윤 박사과정생은 1999년생, 올해 24세다. 다른 박사과정생들은 "이 정도면 젊은 게 아니라 '어린' 과학자 아닌가요?"라며 장난치듯 놀렸다. 

국내 연구중심대학의 대표격인 포스텍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노준석 교수 연구실 소속이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살 만도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여느 청년 과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과생들이 몰리는 의대 진학에 대한 고려, 연구자로서 새로운 연구를 주도해야 하는 부담감,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불안감 등이다. 그러나 '의사와 과학자 중 지금도 택하라고 한다면 과학자를 택하겠다' '주변 많은 이들이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변리사 등 전문직을 택했지만 연구라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눈빛은 빛났다. 

이들의 연구 분야는 메타물질이다. 인공적인 구조체를 이용해서 만든,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메타물질을 활용하는 가장 가까운 예는 렌즈다. 빛의 특성을 제어하는 성질은 유지하면서도 아주 얇고 가벼운 두께인 렌즈를 만들 수 있다. 이외에도 양자점, 촉매 입자, 바이오 센서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할 수 있는 물질이다.  

기본 6년, 그러나 얼마든지 더 길어질 수 있는 기나긴 연구 생활을 이야기할 때면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지만 연구 주제인 '메타물질'을 설명할 때는 진지해졌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젊은 '논문 1저자' 4인을 지난 10월 포스텍 내 포항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만났다.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 땐 같은 연구실 동료와 얘기하며 회복한다 "고 말했다. 포항=박건희 기자

Q. 메타물질 연구에도 다양한 세부 분야가 있을 것 같은데, 각자 관심 갖고 있는 연구 주제는.

김예슬 박사과정생(이하 예슬)=메타물질 구조체의 설계를 맡느냐, 공정을 맡느냐, 공정 후 생산된 물질의 측정을 맡느냐로 연구의 세부 분야가 나뉜다. 메타물질의 설계와 측정을 연구하고 있고, 올해 4년차다. 구조체를 디자인하고,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물질을 측정해서 설계대로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김경태 박사과정생(이하 경태)=메타물질 공정에서 일종의 '파이프라인'을 연구한다. 예컨대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사물에서 나온 빛이 렌즈를 통과하고 센서에 인지되며 이미지화되는 알고리즘이 있다. 이것을 '파이프라인'라고 표현한다. 이때 렌즈를 메타물질로 바꾸면 파이프라인의 일부 요소가 바뀌는 셈인데, 다른 구성요소도 메타물질의 성질에 맞춰 바꿔야 한다. 말하자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고 있다.

김주훈 박사과정생(이하 주훈)=메타물질의 공정 위주로 연구하고 있다. 메타물질로 렌즈를 만들 경우 일반 볼록렌즈에 비해 장점이 많지만 공정 과정이 복잡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어서 상용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공정을 단순화해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현재 3년차인데 학부생 시절부터 연구실에 참여하는 연구참여학생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6년 가까이 된다.  

김홍윤 박사과정생(이하 홍윤)=메타 표면을 바이오메디컬에 접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원래는 다른 박사생들처럼 메타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작년부터 바이오 쪽에 관심이 생겨서 메타물질을 응용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신호가 미약한 유전체 한 조각의 신호를 메타표면을 이용해 신호 자체가 증폭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질병을 기존보다 일찍 진단할 수 있게 된다.

Q.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를 꿈꿨는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주훈=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연구자가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꿈을 꾸게됐다. 학창시절엔 과학과 물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학부도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왔더니 상상했던 물리와 실제 대학에서의 물리가 달라서 공과대학으로 전과하게 됐다. 공대 졸업 후엔 기업에 취직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 모 대기업에서 인턴을 해봤더니 너무 만족스럽더라. 하지만 기업으로 가기 전에 내가 해보고 싶은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됐다.  

경태=고등학교 시절엔 도형 등의 기하학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 입학할 쯤엔 당시 해양조선, 자동차 분야가 워낙 인기있어서 자연스럽게 기계공학과를 선택하게 됐다. 연구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1학년 끝나마자 바로 입대까지 했다. 기계공학과 특성상 전체 200명 중 180명은 회사를 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좋은 학점을 거두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4학년이 됐고 고민이 시작됐다.

주변에서는 거의 다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변리사 등 전문직을 선택했다. '이걸 왜 해야하지?'라는 내면적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 그러다 포스텍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게 됐고, '연구'라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좋은가'와 '나는 왜 이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답이 모두 충족되는 길이었다. 

Q. 수학·과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으로서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진학을 고려해봤을 법도 한데. 

예슬=내 꿈은 원래 역사학자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책에서 '메타물질'을 읽고 '아, 메타물질을 공부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이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분야도 쉽지 않아서 대학 1학년 때 많이 흔들렸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와 이야기하며 연구자가 가진 사명감이나 과학연구에 대한 흥미를 다시금 찾아갔던 것 같다. 지금도 배움의 과정으로서 즐거움을 여전히 갖고 있다. 주변에선 공부를 하던 중에 의대로 방향을 바꾸는 사람도 여럿 봤다. 

홍윤=중학생 때 '과학고를 가게 되면 과학자가 되고 일반고로 가게 되면 의사가 되어야지'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정말 과학고를 가게 됐다. 사실 그렇게 연구의 길로 접어든 것 같은데, 지금도 과학자와 의사 중 하나를 택하라면 여전히 과학자를 할 것 같다. 연구 분야에서도 많은 가능성을 본다. 졸업을 하고 뭘 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전공을 살려 창업하게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수도 있고, 가치있는 연구를 하게될 수도 있지 않냐. 나에게 좀 더 의미있으면서도 사람에게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서 과학자가 됐다. 

주훈=연구중심대학이라는 환경도 한 몫한다. 포스텍은 연구중심대학인데, 학교에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구자와 연구 환경에 노출되면서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게 된다. 학부생 시절부터 랩에 들어가서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참여학생' 프로그램도 활발하고, 졸업 요건으로 논문을 쓰기 위해 필수적으로 연구 참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대학원에 가면 실제로 뭘하지?'라는 그림이 명확한 경우가 적지 않나. 경험하지 않으면 실제 현장에서의 느낌을 절대 알 수 없다. 그런데 학사 과정을 거치며 대학원이라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되고 연구라는 활동이 몸에 배게 된다. 이때문에 주변에서도 취업을 목표로 하거나 의전원을 가겠다는 비율이 많지는 않다. 연구자가 된 '나'의 모습을 그리기 쉬운 것이다. 

Q. 그럼에도 연구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예슬=연구 1~2년차에 특히 고민이 많다. 연구실에서도 잘한다고 인정받는 선배들이 일찍 출근하면서도 퇴근도 안하고 하루종일, 심지어 주말까지도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며 '아, 저게 연구자'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치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면 내가 진짜 연구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한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그 분이 말하길 세상엔 다양한 연구자가 있고 여러 도전을 즐겨도 된다는 거다. '나는 왜 모든 시간을 연구에만 쏟지 않지?'라며 자괴감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거나 주변 친구, 가족과 이야기 나누며 나 스스로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한편 꾸준히 연구생활을 이어가는 방법을 그때 알게됐다. 지금도 서핑이나 마라톤을 취미로 한다. 

홍윤='이제 뭐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들 때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다. 또 내가 하는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걱정이 된다. 사실 우리가 하는 것이 광범위한 과학에서도 아주 작은 분야, 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 아닌가. '이게 정말 어떤 의미가 있지?'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 '가치가 있다, 무엇이든 된다'하며 의미부여하는 방식으로 이겨낸다.

경태=연구 과정이 진척될수록 난관에 처한다. 연차가 낮을 때는 이미 연구 결과가 나와있는 연구를 중심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선배나 교수님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 내가 새로운 연구를 개척해야할 때가 되니 이전보다 속도가 안 난다는 사실에 큰 부담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과정이 당연한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차근차근해나가려 한다.   

Q. 연구개발(R&D) 예산이 감축되는 등 과학기술계에 큰 변동이 생겼다.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 

예슬=이제 박사과정이 2년 정도 남았다. 학계에 남거나 기업에 취직하거나 연구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를 이어나가는 게 꿈이다. 특히 고향에서 연구를 하고 싶은데 사실 쉽지 않다. 지방에는 연구기관도 적을 뿐더러 연구중점대학도 많지 않으니 선택지가 적다. 이번 삭감안 뉴스가 들린 이후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도 많다. 그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을 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마음도 일면 이해가 된다.

경태=사실 모든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정된 예산을 통해 어떤 연구에 얼마만큼 쏟아야할지 고민해야하는 게 사실이다. 이 부분에선 연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메타물질을 연구하는 입장에선 메타물질이 참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 중요성에 대해 국민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잘 설득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정책결정권자도 마찬가지로 좀 더 과학기술계와 소통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미래를 이끌 젊은 과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슬=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지원을 줄이면 중고등학생에게도 분명 영향을 미친다. 공대 진학과 의대 진학이 낳는 결과가 이렇게 다른데, R&D 예산 삭감 등으로 이러한 현상이 더 가시화되면서 상황이 안 좋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래를 생각해서 과학기술 분야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또 여성 대학원생으로서는 육아, 출산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연연의 연구원은 본인 자체가 하나의 기업처럼 과제를 받고 연구해야하기 때문에 육아라는 부담을 지기 쉽지 않다. 여성 연구자의 육아 및 출산을 든든히 지원해주면 좋겠다. 

홍윤=오히려 더 어린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연구라는 게 중고교 시절 성적이나 학점과 큰 관계가 있지는 않더라. 나 같은 경우엔 생물을 정말 못했는데 막상 연구계로 와보니 내가 잘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연구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으면 좋겠다.    

주훈=예산이 줄면서 자리 자체도 줄고, 현재 연구소 안에 있는 인력의 자리도 불안해졌다고 들었다. 그렇다보니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는 기업에 눈길이 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연구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헤매임 끝에 바늘이 없을 수도 있다. 그 막연함에서 오는 불안감이 정말 크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거니까 그렇다. 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바늘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날카로운 물질이라도 찾게 되지 않겠나. 우리는 그 순간의 희열 때문에 연구의 길을 걷는다. 

 

[포항=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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