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파이크] "다양한 경험 필요해" 해외파 택한 이우진, '단비' 아닌 '물꼬'였으면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남자배구판에서 고교 졸업 후 해외로 진출하는 최초 사례,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경북체고 출신 이우진(아웃사이드 히터, 195cm)이 세계무대를 배우러 나선다.
이탈리아 남자프로배구 1부 베로발리몬차는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이우진 선수와 연간 인턴십 계약을 맺게 되어 기쁘다"며 "경북체고에서 온 2005년 생 한국 선수는 베로 발리의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모험에 나설 준비가 됐다. 키 195cm의 탄탄한 체격을 자랑하는 이우진은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U-1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 스파이커 상을 받았다"며 공식 입단 소식을 발표했다.
국내 배구 선수가 고교를 졸업한 후 한국배구연맹(KOV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곧장 해외 리그에 뛰어드는 사례는 사상 최초다.
현재 국내 배구선수가 해외 리그에 진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프로리그 출범 이전으로 거슬러가도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기원 현 태국대표팀 총감독 정도가 있다. 프로리그 출범 후에는 독일 리그에서 뛴 문성민(현대캐피탈), 일본 울프독스 나고야에서 뛴 윤봉우(현 해설위원)과 튀르키예, 중국, 일본 리그 등에서 활약한 김연경(흥국생명), 아제르바이잔 리그에서 뛴 김사니 정도가 있다.
최초 사례인만큼 이우진의 출국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우진은 지난 15일 출국 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외 진출에 김연경이 도움을 줬음을 알려왔다.
이우진의 부모는 절박한 심정으로 김연경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을 평소에도 적극 장려해왔던 김연경은 곧장 손을 보탰다. 그의 해외 에이전트인 아이엠스포츠컨설팅 임근혁 대표가 공항으로 나와 이우진과 함께 했다.
김연경과 임 대표 모두 최소한의 사례조차 받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을 장려했다.
또 해외 진출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대한항공의 리베로 송민근이 슬로베니아 리그로 해외 연수를 떠났다. 이 또한 반길만한 사례다.
임 대표는 지난 13일 열린 배구협회의 국가대표팀 국제경쟁력 강화 공청회에도 패널로 나선 바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다양한 해외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풀어놓았다.
당시 그는 국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해 말했다. 2020 도쿄 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을 이끈 라바리니 감독에 대해서도 풀어놓았다. 임 대표는 "당시 라바리니 감독은 이탈리아 중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며 역량을 키웠다. 만약 라바리니가 이탈리아에서만 머물렀다면 (대표팀에) 데려오는데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 국가와 타 리그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높게 봤다"고 전했다.
임 대표는 보는 시야를 넓게 키워야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마르첼로 아본단자(흥국생명) 감독도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높은 인지도를 쌓은 감독이지만 일단 과거 활동 이력을 봤을 때 이탈리아에서 첫 코치를 시작해 튀르키예, 폴란드, 캐나다, 그리스 대표팀 등을 거치며 배구를 해본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임 대표는 국제 배구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지도자'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아니냐며 일부 시도협회 관계자들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대표는 '외국인 우월 주의'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국제 배구의 흐름을 따라가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도자와 선수 모두 다양한 리그를 경험하고 많은 문화를 접하며, 많은 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임 대표가 지도자를 선발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인턴십부터 걸음마하는 이우진의 해외 리그 진출이 선수로서 대성공으로 끝날지를 보장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까지 해온 배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향후 본인의 가치를 좀 더 다양하게 결정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시행된 아시아쿼터제로 '한국 배구 꿈나무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목소리가 간혹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경험과 경쟁력을 키워 이길 생각 없이 자리보전을 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우진의 해외 진출이 '가뭄에 단비'가 아닌 '물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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