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미래] 뜨거워지는 노동시장에서 익어가는 개구리
우리 노동시장의 혈관은 여러 곳이 막혀 있다. 저성장 균형과 이직 성향 증가로 고용 유지가 어려움에도 제도와 인사관리는 장기고용 관행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동법은 교섭력이 취약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인데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며, 5인 미만 근로자와 플랫폼 종사자 등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근로시간 제도도 70년째 변함이 없다. 무섭게 변화하는 세상을 제도와 관행이 발목 잡는 형국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 결정 방식이다. 임금은 노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제도다. 근로자에게는 생계의 원천으로 소득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다. 2023년 2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구소득의 63%가 근로소득이다. 사용자에게도 임금은 중요하다. 상품과 제조 원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임금이다. 2022년 한국은행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비금융법인이 창출한 총부가가치 중 노동비용으로 사용된 피용자보수의 비중은 52%에 육박한다. 임금은 이윤 결정의 핵심 요소인 노동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근로자들의 노동 의욕이 커지거나 작아진다. 따라서 임금의 결정은 효율적이며(효율성), 공정하고(공정성), 적법해야(적법성) 한다.
효율성은 임금 차이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특정 기준에 따라 임금의 차이를 두어야 근로자들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연차, 직무, 역량, 성과 등에 따른 임금 차이는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유인하고 결정하는 핵심 요소들이며, 어떠한 기준으로 임금을 차등화할 것인가의 이슈가 임금체계다. 모든 근로자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한다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공정성은 동일 또는 유사 기준과 자격을 갖는 근로자에게 같은 대우를 해야 하는 원칙이다. 연공형 임금체계라면 같은 연차에 속하는 사람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 직무나 역량을 기준으로 임금 차이를 두는 경우에도 조건이 같다면 임금은 동일해야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공정성 이슈인 셈이다. 효율성은 노동생산성을 유인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며, 공정성은 임금의 수용성을 보장하는 장치다.
합법성은 임금과 관련한 법률적 요구다. 업무와 관련 없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임금을 차등하는 것은 차별로서 금지되며, 조건이 동일한 경우 고용 형태를 이유로 임금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모든 근로자에게 법정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하며, 소정근로시간 외 연장근로, 휴일근로 등에 대해서는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이외에도 근로자 임금에 관련된 법률적 요구는 많다.
무엇보다 연공형 임금체계는 대·중소기업간 임금수준 격차의 원인이며 기업 간 노동이동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임금수준은 한 기업에 종사하는 전체근로자의 임금을 근로자 수로 나눈 값인데 우리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과도하다. 이는 장기고용, 연공임금, 기업노조의 체제 위에서 작동하는 대기업 내부노동시장이 외부시장의 이익을 전유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세대는 내부시장의 안전망 위에서 고용과 임금을 보호받았고, 생산성을 초과해 임금을 인상했으며, 기업은 그 비용을 하청중소기업과 시장에 전가했다.
현재의 구조가 유지되면 중층화한 하청업체의 지불능력은 점점 더 고갈되고 해당 부문 종사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열악해져 누구도 가려 하지 않는 시장으로 슬럼화할 수밖에 없다. 하방경직의 고비용구조로 대기업의 채용 여력도 줄어들게 되며 내부시장이 닫혀 있어 노동이동 또한 어렵다. 비정규직 늪에 빠져 있는 계약직 근로자들의 숙련 형성과 고용 안정은 불가능하다. 변화는 빛의 속도인데 우리는 소가 끄는 마차 위에서 세상을 쳐다보고만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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