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운명’ 제주 노루, 총성 멈추자 증가…적정개체수는 밑돌아
전년비 500여마리 늘어…조천 등은 감소
천적 들개, 경쟁관계 사슴 출현 환경 변화도
한라산의 상징 동물에서 유해야생동물로 운명이 바뀌어 포획되는 신세로 전락했던 제주 야생 노루. 4년 전 유해동물 지정에서 벗어나면서 제주노루의 개체수가 서서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여전히 적정 서식 개체수를 밑돌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지난 9~10월 구좌, 조천, 애월, 남원, 표선, 안덕 등 제주지역 6개 읍면에서 노루 개체수를 표본 조사한 결과 도 전역에 48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조사한 4300여 마리에 비해 500여 마리가 증가한 수치다. 서식밀도는 ㎢ 당 평균 3.32마리로, 2022년도 평균 2.96마리보다 다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별로 보면 조천읍은 2018년 이후 매년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조천 지역의 개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애월읍과 안덕면 지역은 증가와 감소가 반복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제주 노루 개체수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나 ‘제주지역 노루 적정 서식 개체수’로 추산하고 있는 6100마리에는 못 미치고 있다.
한라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한라산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제주 노루는 2014년 1만2000마리까지 늘어나며 정점을 찍었다. 노루 개체수가 많아지자 먹이경쟁이 심화됐다. 한라산과 중산간 지역에 서식하던 노루들이 민가가 있는 지역까지 내려와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밭을 훼손했다. 농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논란 끝에 제주 노루는 2013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유해동물로 지정됐다. 유해동물로 지정되면 총기류 등을 이용한 포획이 가능해진다.
유해동물로 지정하고 포획을 실시한 결과 제주 노루는 2018년 3900마리, 2020년 3500마리까지 감소했다.
제주 노루는 유해동물 지정 해제 후 포획이 다시 금지되면서 점차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예전처럼 가파른 상승세로 이어질지는 보다 지켜봐야 한다. 주변 환경이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기견이 중산간에 적응하면서 야생성을 가진 들개가 됐고, 노루까지 사냥하는 천적이 됐다. 제주도 관계자는 “들개는 어린 개체를 노리는 만큼 안정적인 출산과 개체수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쟁 동물도 등장했다. 농가 등에서 사육 중이던 외래종 사슴류가 탈출해 개체수를 늘리면서 서식지를 놓고 노루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정군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장은 “제주에서도 지역별로 노루 개체수가 다른 것은 식생 변화, 안정된 서식공간, 야생화된 개의 분포, 로드킬 등 여러 요인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지역별로 세분화한 조사를 통해 제주 노루의 서식 특성을 더욱 명확하게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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