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 부여… 신중한 접근 필요[디지털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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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남방큰돌고래라는 특정 종에 대해 법률적으로 권리를 부여하면 복잡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연안의 최상위 포식자로 한치, 광어 등 다양한 해양생물을 먹이로 섭취하고 있는데 과다 번식을 하면 오히려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도는 13일 ‘생태법인 제도도입 제주특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갖고 국내 최초로 생태법인을 도입해 제주의 생태·환경적 가치를 지키고 국내 생태환경 정책의 새로운 표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3월부터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워킹그룹을 운영했다. 워킹그룹은 모두 4차례 회의를 거친 결과 남방큰돌고래 법인격 부여, 생태법인 창설 특례마련 등 2가지 안을 구체화했다.
법인격 부여안은 남방큰돌고래에 직접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생태법인 창설안은 제주특별법에 관련 규정을 두되 제주지사가 도의회 동의를 얻어 특정 생물종 또는 핵심 생태계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공고하는 방식이다.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이 부여되면 돌고래는 자연에서 존재하고 진화할 권리, 서식지에 대한 관리, 권리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얻게 된다. 서식지가 훼손되는 등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는 생태후견인을 통해 소송과 같은 법적 다툼도 할 수 있다. 남방큰돌고래의 이익과 권리를 대표하는 생태후견인은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0명 이내로 구성한 생태후견위원회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생태법인 제도화 특례가 담긴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내년 4월 총선 이후 구성될 22대 정기국회에서 발의,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5년에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 제1호로 지정할 계획이다.
제주도와 워킹그룹 측은 이번 생태법인 제도 도입에 대해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를 전환하는 계기’라고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2017년 황가누이강이 법 제정을 거쳐 법인격을 획득해 마오리 원주민 1명, 정부대표 1명이 후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캐나다 맥파이강, 인도의 갠지스강 등도 법적 권리를 가졌다.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해외에서 법적 지위를 가진 자연물은 ‘강’ 위주이다. 오염의 주범인 인간을 비롯해 다양한 생태계로 이뤄진 복합체이다. 제주도가 특정 종에 주목하는 부분과는 다소 다르다. 특정 종에 대해서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제주에서 한때 멸종위기에 놓인 노루에 대해 대대적인 보호활동을 벌인 끝에 개체수가 1만여마리로 급증했다. 개체수 증가로 농작물 피해는 물론이고 식물생태계에도 위협요인이 되자 유해동물로 선정해 포획 등으로 개체수 조절에 나선 경험이 있다. 미국에서는 늑대를 멸종시키다시피 사냥했다가 뒤늦게 옐로스톤국립공원에 늑대를 방사한 뒤에야 엘크 개체수가 줄어들었고, 이어 버드나무생태계가 살아나면서 버드나무로 집을 짓는 비버도 강에 돌아온 사례가 있다. 특정 종에 대해서만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또한 남방큰돌고래가 법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면 먹이 생물인 한치, 오징어, 광어 등의 권리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도 문제다. 지능이 상당하다고 알려준 문어에 대해서도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면, 남방큰돌고래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명확하게 설득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제주연안에 110~120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남방큰돌고래가 폐그물, 선박관광 등에 의해 위협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보호해야할 대상인 점도 분명하다. 다만 특정 종이 아니라 남방큰돌고래를 둘러싼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태법인 제도도입을 고민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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