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수 생활의 터닝포인트, 엄상필 형"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자그마치 1천539일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프로당구 출범 첫 시즌,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에서 멋모르고 한번 들었던 우승컵의 기쁨을 다시 맛보기 전까지 터널이 너무 길었다.
지난 15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4시즌 6차 투어 'NH농협카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최원준이 비롤 위마즈(튀르키예, 웰컴저축은행)를 세트스코어 4-2로 꺾으며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4강에서 최성원(휴온스)과 풀세트 명승부를 벌이고 올라온 최원준은 위마즈와의 대결에서는 폭발적인 장타력과 시원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수월한 승부를 펼쳤다. 우승 확정 후 시종일관 침착하던 그가 짓는 눈물은 그 어떤 우승 세리머니보다도 관중의 마음을 울렸다.
경기 후 우승컵과 함께 기자회견실로 들어선 최원준은 "PBA 초창기때는 자신감도 있었고, 당구도 많이 쳤다. 그런데 우승하고부터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며 소감에 대한 운을 뗐다. 이어 "PBA에는 너무 쟁쟁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다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열심히만 치자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컨디션보다는 멘탈을 잡았던 것이 우승 요인이라 본다"고 전했다.
출범 시즌 한번 반짝 정상에 올랐을 때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였다. 그는 "당시에는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 크라운해태) 선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아무것도 몰랐다. 우승 후에 시즌이 지나고 알게 됐다. 또 이후에 새로운 큐로 바꿨는데 슬럼프에 빠졌다. 그때는 큐가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당연히 '반짝우승'이라고 생각했을 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 정신적 기둥, 엄상필 형
그의 아버지는 지난 해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런 그를 정신적으로 지탱해 준 사람은 다름아닌 엄상필이었다.
최원준은 팀리그 첫 출범 시즌인 20-21시즌, 블루원리조트에 잠시 몸담았다. 그러나 성적을 내지 못해 방출 통보를 받았다. 리더 엄상필은 어려워하는 최원준을 곁에서 오래 지켜보며 꾸준히 조언을 건넸다고.
그는 "같은 팀 리더인 (엄)상필이 형의 조언 덕분에 선수 생활에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고마운 마음을 거듭 전했다. 팀의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엄상필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줬다.
"제 당구 인생에서 (엄상필로 인해) 신선한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봐라. 대충 치고 하늘에 맡기지 말라'는 조언이 가장 와닿았다. 공을 칠 때는 정확한 경로를 설계해야하는데, '대충 이 쯤에 맞겠지' 하고 운에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대부분 세트 경기 하다보면 정신적 데미지가 큰데, 자다 일어난 듯한 멍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샷을 하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 "저거 조금만 치면 잡을 수 있겠는데"
4강에서 명대결을 펼친 최성원도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와 최성원은 이번 4강전에서 처음으로 직접 맞대결을 펼쳤다.
"이전까진 얘기로만 들었던 (최)성원이 형의 경기였다"고 말문을 연 최원준은 "직접 만나보니 서서히 늪에 빠지는 느낌이다. 경기 운영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하고 있고, 그런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선수라는 것을 체감했다. 사실 4강전 6세트 9-14가 됐을때는 다소 내려놨는데, 기회가 온다면 한 큐에 끝내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현실이 돼서 제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최성원의 진면목에 대해서 알게 된 이번 대회다. 그는 "4강 1경기를 최성원 선수와 함께 봤는데, 위마즈가 세트포인트, 노병찬이 10점 차이가 났다. 그런데 옆에서 (최)성원이 형이 '저거 조금만 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하더라. 그때 '이 사람은 최고다'라는 생각을 했다. 경기하면서 팬이 됐다"며 엄지를 세웠다.
■ 프로선수, 가장, 남편, 두 딸의 아빠
이번 대회 우승으로 두 딸의 아빠인 그는 자랑스러운 가장으로 어깨를 다시 폈다. 최원준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관중석의 아내와 함께 눈물 짓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의 큰 딸은 올해 10살, 둘째 딸이 7살이다. 그간 성적 부진으로 힘들었던 그는 딸들에게 늘 "아빠가 당구를 치면 이길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 항상 이기면서 살 수는 없는거야"라고 이야기해야 했다. 평소에도 아빠의 고충을 이해하던 큰 딸 서연 양은 이번 결승전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이제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그는 "큰 딸이 학교가면 '우리 아빠가 우승했다'고 친구들에게 알려준다고 했다. 자랑스럽게 '우리 아빠 프로당구선수야'라고 얘기한다고 하더라"며 미소지었다.
곧 입금될 1억원의 상금도 그간 어려웠던 생활을 펴는데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쓰임새를 묻자 "코로나19로 많이 어려웠는데, 은행 대출금을 갚고 저를 많이 도와주신 분들께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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