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문을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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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가정 형편 때문에 우리 집에 맡겨진 사촌과 오락을 하다가 눈을 멍들게 한 것, 나중에 철들고 사과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은 것,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 것, 내 비겁함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질문을 멈춰선 안 된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는 동안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동안에, 폐허가 된 도시에서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요" 하고 어린이가 계속해서 우는 동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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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은 또 다른 전쟁으로 번졌다.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불과 3주 만에 어린이 3천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가 전쟁을 원하는 걸까. 나치 정권의 제국 원수이던 헤르만 괴링은 뉘른베르크재판에서 “평범한 사람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보통 사람은 지도자가 결정하면 전쟁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람들을 전쟁에 불러내는 건 아주 쉽다”며 “‘적에게 공격받고 있다’ ‘평화주의자는 애국심이 없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까지 자유로를 자동차 타고 일을 보러 가는 길에 전쟁 상황을 라디오로 접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무사히 강의실에 도착했고 ‘문학의 역할’에 관해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면 됐다. 준비한 강의록대로 말하면 됐다.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전쟁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다. 그것들을 모아 시집으로 묶었다. 따지고 보면 문학적 소재였다. 그 많은 죽음 앞에서 염치없이 시 같은 것을 끄적였다니. 내 곁의 존재가 소리 없이 사라질 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 발달장애인 친구가 있었다. 종종 또래보다 덩치가 큰 남학생들이 그 친구의 가방을 잡아당기며 괴롭히는 모습을 봤지만 모르는 체했다. 담임선생님마저 칠판지우개로 그 친구의 뺨을 때리며 못되게 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우리 집에 맡겨진 사촌과 오락을 하다가 눈을 멍들게 한 것, 나중에 철들고 사과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은 것,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 것, 내 비겁함의 시작이었다.
이랑의 두 번째 정규앨범 《신의 놀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신의 놀이>)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군은 국군의날을 기념해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숭례문부터 광화문까지 탱크와 장갑차를 필두로 거리행진을 했다. 힘은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하고 교회와 병원과 학교를 공습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 그리고 망각하게 한다. 우리는 안다. 어떤 전쟁에도 승자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일이 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랑은 “이건 뭔가 되게 크게 잘못된 것 같아”(<가족을 찾아서>) 하고 되뇐다. 그는 자기의 “무기력감이나 공포심”(<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을 고백한다. 되풀이한다. 일기장에 “자신에 대한 질문”(<평범한 사람>)을 가득 적는다. 우리는 질문을 멈춰선 안 된다. 누구도 우리 입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앞에서 글쓰기는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는 동안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동안에, 폐허가 된 도시에서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요” 하고 어린이가 계속해서 우는 동안에. 홀로 앉아 문장을 다듬고 언어를 세공하는 것이.
먼 훗날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하루 사이 이백여 명의 사람이 숨졌다는 보도.
미래를 믿지 않으면 쓸 수 없다고 하는데…….
어제도 오늘도 고요하다.
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다면.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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