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다? 아니, 멋졌다!' 韓 전설의 덕담·방출생 살린 캡틴, 뜨거운 PBA 브로맨스
잇따라 짜릿한 역전승으로 생애 2번째 프로당구(PBA) 투어 우승을 차지한 최원준(45). 15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남자부 4강전과 결승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명승부 끝에 이룬 값진 우승이었다. 최원준은 한국인 최초의 세계3쿠션선수권 우승자 최성원(46·휴온스)와 4강전에서 풀 세트 혈투 끝에 4 대 3 승리를 거뒀다.
특히 최원준은 세트 스코어 2 대 4로 뒤진 6세트에서도 9 대 14, 매치 포인트에 몰렸다. 그러나 최원준은 벼랑 끝에서 뱅크 샷을 포함해 6점을 몰아치며 극적으로 15 대 14로 승부를 뒤집었다. 여세를 몰아 7세트 최원준은 뱅크 샷 5개를 터뜨리며 결승행을 확정했다.
결승도 재역전승이었다. 최원준은 '튀르키예 전사' 비롤 위마즈(37·웰컴저축은행)를 맞아 1세트를 따냈지만 2, 3세트를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최원준은 그러나 이번에도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4~6세트를 내리 이겨 우승을 확정했다. 각각 하이 런 8점, 6점, 5점을 쓸어 담아 완승을 거뒀다.
PBA의 출범 시즌인 2019~2020시즌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이후 4년여 만의 우승이다. 최원준은 이후 결승에 1번도 오르지 못했고, 팀 리그 블루원리조트에서 방출돼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만큼 더욱 값진 우승이었다.
최원준의 우승 뒤에는 명승부만큼 뜨거웠던 동료애가 있었다. 아쉽게 졌지만 패자들도 아름다웠다. 모두 열심히 노력해온 만큼 승자의 우승을 기원했고, 정상 등극을 축하해줬다.
특히 처음 맞붙은 후배에 석패를 안은 최성원은 한국 당구의 전설다운 면모를 보였다. 최성원은 2014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세계3쿠션수권대회 정상에 올랐고, 역시 처음으로 세계캐롬연맹(UMB) 세계 랭킹 1위에도 등극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PBA에 전격 진출한 최성원은 1~4차 투어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5차 투어인 휴온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이번 대회 4강에 오르며 명성을 확인했다.
최성원은 이번 대회에서도 파죽지세로 4강에 올라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바라봤다. 그러나 결승까지 단 1점을 남기고, 최원준에 뼈아픈 역전패를 안았다. 속이 쓰릴 법도 한 상황.
하지만 최성원은 쿨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후배에게 덕담을 전했다. 우승 인터뷰에서 최원준은 "사실 경기할 때 상대와 인사도 잘 안 하게 되는데 성원이 형은 정말 대인배"라면서 "4강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 이어 "경기가 끝나고 '형님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고 인사했는데 형이 '우승해라, 파이팅.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주시더라"고 덧붙였다.
최원준은 이겼지만 패자의 팬이 됐다. 최원준은 "앞선 4강전을 함께 보다가 위마즈가 10점 차 세트 포인트를 맞았는데 성원이 형이 '노병찬이 조금만 치면 뒤집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하더라"면서 "어떻게 그 상황에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이 사람은 최고다' 생각에 팬이 됐다"고 귀띔했다. 공교롭게도 최원준이 최성원의 말처럼 벼랑에서 포기하지 않고 극적 역전승을 거둔 셈이 됐다.
4강전에 대해 최원준은 "처음 형과 맞붙었는데 '깊이를 봤을 때 정말 힘든 상대구나' 서서히 늪에 빠지는 느낌이었고, 커리어가 느껴졌다"면서 "4강전 뒤 너무 힘들어서 찬물로 샤워를 하면서 정신을 차려야 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9 대 14로 뒤진 6세트에는 다 내려 놓고 있었는데 한 큐에 끝내자는 생각뿐이었다"면서 "정말 그렇게 이겨서 뿌듯하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준우승자 위마즈도 최원준의 우승에 기꺼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경기 후 위마즈는 "이번 투어에서 컨디션이 매우 좋아 절대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서 "1세트를 내줬지만 다시 2 대 1로 역전했을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결승에서 최원준 선수가 더 좋은 모습을 보였고, 우승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고 박수를 보냈다.
최원준은 긴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바로 블루원리조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엄상필(46)의 값진 조언이다.
우승 뒤 최원준은 엄상필에 대해 "팀 리그 소속이었을 때도 방출 이후에도 개인 투어 때 만나서 형에게 상담을 많이 받았다"면서 "최근에도 마찬가지고, 당구 인생에서 신선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보고, 이 근처겠지 대충 친 뒤 하늘에 맡기지 말고 정확하게 설계를 해야 한다"는 형의 조언이 가장 와 닿았다는 최원준이다.
최원준은 "대부분 선수들이 세트 경기를 하다 보면 정신적인 타격이 큰데 자다 일어난 듯한 멍함을 느끼기도 한다"면서 "그러면 머리와 팔이 따로 놀 때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끝까지 샷을 하라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이어 "상필이 형이 알려준 큐질이나 훈련 루틴을 1년 4개월 동안 갈고 닦았는데 사실 완성하진 못했지만 몸에 익숙해진 부분은 있다"면서 "오늘 결승 때도 지고 있을 때 형이 해준 말을 상기하면서 쳤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2019년 이후 깊은 슬럼프를 이겨내고 4년여 만에 다시 우승컵을 거머쥔 최원준. 값진 부활 스토리는 명승부만큼 뜨거웠던 PBA 선수들의 브로맨스가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고양=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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