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평평한 운동장’ 열린다
상환기간은 개인 기준 일원화
국내증시 개인수급 훈풍 불 듯
전산시스템·처벌강화는 과제로
공매도 제도의 ‘기울어진 운동장’ 개선을 줄기차게 요청했던 개인투자자들의 숙원이 정책에 적극 반영됐다. 정부가 외국인·기관의 상환기한을 개인과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하고 개인의 담보비율을 조정하면서, 국내 증시에는 개인 수급을 중심으로 훈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은 남은 과제인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과 처벌강화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16일 민당정협의회가 발표한 ‘공매도 제도개선방향’에 따르면 기관·외국인이 주식을 차입하는 대차거래 상환기간을 개인 대주 서비스와 동일하게 90일(연장 가능)로 했으며, 대주 담보비율은 코스피200은 현행대로 120%를 유지하되 현금은 105%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로써 외국인·기관에 유리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촉구한 개인 투자자들의 염원이 상당수 이뤄지게 됐다. 담보비율은 ‘외국인·기관’ 기준으로, 상환기간은 ‘개인’ 기준으로 일원화된 것이다.
지난달 5만명 동의를 얻으며 공매도 금지의 기폭제가 된 국민 청원은 “기관·외국인의 경우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기관·외국인은 수익이 날 때까지, 즉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무기한으로 기다리면 절대 손해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미국(150%)과 일본(130%)은 외국인·기관과 개인의 담보비율이 동일하고, 미국의 경우 상환기한은 투자주체와 상관없이 증권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담보비율 및 상환기간을 선진국에 맞춰 공매도를 재개하면 오히려 글로벌스탠다드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셈이다.
다만 개인과 동일한 상환기한 산정을 두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기관에 주식을 빌려주는 기한과 개인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기한을 통일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지 의문”이라며 “공매도 투자의 주체인 기관투자가들이 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주식이 연일 상한가를 쳐 손해가 커지면 공매도를 한 사람이 투자한 금액 이상의 손실을 책임져야 하는데, 개인과 기관의 상환 능력에 차이가 있어 상환기한뿐 아니라 담보비율 역시 차이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남은 과제인 공매도 전산화와 불법공매도 처벌강화가 이어질 지도 관건이다. 주식 대차 협상·확인·계약 과정에선 전화와 텔레그램, 메신저 등 다양한 수단이 활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개인적으로 거래소에 회원사로 가입된 증권사들이 해당 주문을 넣는 외국계나 고객들의 대차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주문하는 것이 적절치 않나 생각한다”며 “그것이 전산화 형태로 구현될지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해외 주요국보다 솜방망이 수준으로 낮았던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미국에선 고의로 무차입 공매도를 하고 결제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2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달러(약 60억원) 이하 벌금이라는 강력한 처벌 대상이 된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공매도 규정 위반 시 각각 50만유로, 200만유로(약 26억5788만원)씩 벌금을 책정하며 영국은 벌금에 상한이 없다. 프랑스는 1억유로(약 1328억원)나 법인 기준 이득의 10배의 금액까지 벌금을 부과하고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다. 다만 일본의 경우 불법 공매도 처벌로 30만엔(약 288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해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약하다.
한국은 2010~2020년 불법 공매도로 적발된 법인 101곳 중 56곳이 주의 처분만 받았을 만큼 처벌이 약했다. 이에 한국도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2020년 말 자본시장법을 개정, 1년 이상의 징역(최대 30년, 가중 시 50년) 또는 부당이득액의 3~5배 이하 벌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이렇게 바꾼 법이 실효성을 동반하는지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이 구형할 때 감형 요소가 있어 장기간의 징역 사례가 실제로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게 비판론자들의 생각이다.
윤호 기자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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