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뜰예산 흔드는 여야 협공[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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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 내놓은 '2024년 예산안' 홍보 자료의 부제(副題)는 '알뜰 재정, 살뜰 민생'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했던 고민, 과정, 결과 등이 모두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
내년 예산이 정부 안대로 편성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무려 92조 원 적자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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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 내놓은 ‘2024년 예산안’ 홍보 자료의 부제(副題)는 ‘알뜰 재정, 살뜰 민생’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했던 고민, 과정, 결과 등이 모두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알뜰살뜰’은 ‘일이나 살림을 정성껏 규모 있게 꾸려 가는 모양’이라고 나온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년 나라 살림이 넉넉지 않은데 그런 와중에도 나름대로 써야 할 곳은 쓰려고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짰다는 뜻이다.
내년 예산안 총지출이 전년 대비 2.8% 증가한 656조9000억 원이라고 발표됐을 때 전문가들은 놀랐다.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낮은 총지출 증가율이었기 때문이다. 19년 만에 가장 낮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를 겪은 해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내년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다. 총선이 있는 해에 집권 세력이 이렇게 낮은 총지출 증가율로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국민도 ‘돈 쓰는 정부’를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짠물 예산’을 편성했다. 이런 자해(自害)나 다름없는 일을 한 이유는 뭘까.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의 재정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만큼 악화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 출범 직후 과도한 재정 지출 확대에 끝까지 반대했던 박춘섭 전 기재부 예산실장(현 금통위원)이 청와대 눈 밖에 나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2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한 예산실장’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은 그 시절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逸話)다. 온 사방에서 ‘내년 예산이 짜게 편성됐다’고 난리지만, 재정 건전성 지표를 살펴보면 완전히 ‘딴 세상’이다. 내년 예산이 정부 안대로 편성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무려 92조 원 적자를 기록한다. 올해 본예산 관리재정수지 적자(58조2000억 원)보다 적자 폭이 33조8000억 원이나 늘어난다.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61조8000억 원이나 증가한 1196조2000억 원을 기록, 국내총생산(GDP)의 51.0%로 높아진다. 내년 예산이 ‘짠물 예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국민의힘은 최근 “40개 사업에서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일부 연구·개발(R&D) 예산 등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어렵사리 내놓은 ‘알뜰살뜰 예산’의 편성 기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춘 가장 큰 이유가 악화한 재정 건전성과 예산을 둘러싼 정치권의 극단적인 다툼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야 정치권이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의 기조를 흔들지 않고, 법정 시한인 오는 12월 2일 이내에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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