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 둘둘 말려 있던’ 작품, 54년만에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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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화 작업을 기초로 점차 번짐이 나타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윤형근의 1970년대 대표작들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귀한 작품을 발굴하면서 작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 계기가 돼 의미가 크죠."
한국 근·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윤형근(1928∼2007)의 1969년 작 '69-E8' 앞에 선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반세기 만에 대중과 만나는 작품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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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복역 등 거치며 단색화 거장으로
1969년 상파울루 출품후 묘연
유족이 작업실 정리하다 발견
“작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해”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화 작업을 기초로 점차 번짐이 나타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윤형근의 1970년대 대표작들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귀한 작품을 발굴하면서 작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 계기가 돼 의미가 크죠.”
한국 근·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윤형근(1928∼2007)의 1969년 작 ‘69-E8’ 앞에 선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반세기 만에 대중과 만나는 작품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오묘한 흑빛’을 띠는 청다색(靑茶色)과 특유의 번짐 기법으로 익숙한 ‘침묵의 화가’ 윤형근의 작품이라기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선명한 선을 경계로 노랑과 빨강, 파랑이 칠해진 그림 한 점이 한국 추상미술 논의의 새 장을 열고, 작가의 내밀한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16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걸린 이 작품은 윤형근이 1969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선보인 것으로 지난 50년 넘게 행방이 묘연했다. 당시 출품하며 찍은 사진은 남아 있을 뿐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발견됐다. 15일 언론 공개회에서 만난 전 학예연구사는 “유족들이 재작년 수해를 입은 작업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캔버스 틀에서 떨어져 나와 구석에 둘둘 말린 채로 보관돼 있던 것을 발굴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의 중요성을 생각해 구입을 제의했고 여러 대중에게 작품이 소개될 수 있단 점에서 유족이 흔쾌히 수락해 소장작품으로 전시에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윤형근이 1960년대에 남긴 기하학적 추상화란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단색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윤형근은 3번의 복역 등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인생공부를 마친 뒤 1970년대에 들어 40대 중반의 나이로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도시화가 이뤄졌던 1960년대 미술가들이 건축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조형미를 탐구하고 박서보, 하종현 같은 대표적인 단색화가들도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실험했던 것처럼, 윤형근도 기하추상을 시도하며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간 것이다. 전 학예연구사는 “그간 1960년대는 윤형근의 작업에서 중요한 시기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하던 기하추상을 거쳐 그를 대표하는 청다색 시리즈로 가게 된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명영의 ‘오(悟) 68-C’와 이승조의 ‘핵 G-999’도 50여 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이 밖에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대를 대표한 47명의 추상화가 작품 150여 점과 신문·잡지·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서양의 사조를 답습하지 않고 한국적인 정신을 가미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조명한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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