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이 1주일 살아보는 건 어떨까"
지속 가능한 지구 위한 행동 촉구 르포르타주
(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코카콜라, 네슬레, 엑손모빌, 듀폰….
기후·환경 전문 저널리스트인 도로테 무아장은 이들 글로벌 화학·소비재기업을 모두 '플라스틱 테러범'으로 지목한다.
저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 '플라스틱 테러범'을 플라스틱으로 환경과 공중 보건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테러범'들이 지구 환경에 끼치고 있는 해악은 광범위하다.
1905년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가 개발된 후 인류는 100년 넘게 플라스틱 시대를 살고 있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마법 같은 재료'라고 명명했던 플라스틱은 이제 지구 환경의 존속을 위협하는 괴물로 변했다.
세계 플라스틱 생산업체가 만들어내는 플라스틱의 총량은 한해 4억5천만t이다.
이는 지구상 전체 인구 몸무게의 합과 맞먹는다.
세계 인구는 1분마다 100만개의 물병과 1천만개의 비닐봉지를 소비한다.
코카콜라는 분당 20만병의 음료를 내다 판다. 세계 기업 중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유통한다. 이는 쓰레기도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의미다.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은 1천만~2천만t. 1초에 1t이 해양에 버려지는 꼴이다.
바닷속에는 은하계의 별보다 500배 많은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떠돈다.
1997년 선장이자 해양학자인 찰스 무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와이로 가는 항해 도중에 프랑스 면적의 2배나 되는 거대한 쓰레기 지대를 발견한다. 이는 '7대륙' 또는 '플라스틱 수프'로 명명됐다.
2019년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과학자들은 수심 11km의 마리아나 해구에 있는 작은 새우의 몸에서조차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를 발견했다.
잠수함 조종사들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보이면 바닥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토양은 어떤가.
2020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지표상에 플라스틱이 없는 곳은 단 한 구석도 없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독일의 연구 발표에서는 토양이 해양보다 적게는 4배에서 크게는 23배까지 오염됐을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대기 중에 방출되는 미세 플라스틱 입자의 주범으로는 타이어가 지목된다.
도로 주행과 브레이크를 밟는 과정에서 마찰로 발생하는 미세 입자는 곧 자동차 배기가스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기자동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장점은 있지만, 배터리의 엄청난 무게 때문에 타이어 마모는 더욱 가중될 수도 있다고 한다.
공기와 물, 토양에 가득한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의 몸에 여러 경로로 농축된다.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티백 1장을 95도 물에 끓였더니 미세 플라스틱 116억개와 나노플라스틱 31억개가 나왔다는 실험 결과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나온 적도 있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이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해 늘려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만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일반적인 의미로 프로파간다는 '어떤 것의 존재나 주장 따위를 설명해 동의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선전'쯤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지난 40년간 제시한 해결 비전은 재활용 플라스틱이다.
폐기물을 최대한 수거해 재활용 함으로써 환경 오염을 줄이고 자원의 선순환을 도모하겠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행은 어떤가.
미국 산업체는 1950년 이후 생산된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9%만 재활용하고 12%는 소각했다.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자연 속에 버려졌다.
코카콜라는 2025년까지 플라스틱 용기에 재활용 소재를 25% 이상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으나, 2020년 말 기준으로 10%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이처럼 재활용 비율은 10% 미만이다. 나머지는 땅에 묻히거나 바다로 흘러간다.
재활용돼서 새 생명을 얻어도 순수한 재활용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재활용 공정에서 순도를 높이기 위해 새 플라스틱을 혼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의 양이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재활용 과정에서 발암물질이나 내분비교란물질 등의 독성 첨가제가 들어가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대중은 이러한 기만적인 프로파간다에 현혹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민들은 안심하고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제품을 걱정 없이 구입하고, 포장재를 정성껏 분리수거한다.
폐기물 처리의 책임은 슬그머니 소비자에게 떠넘겨지고, 기업들은 플라스틱으로 겹겹이 포장한 상품으로 또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을 위한 실천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텀블러를 이용하고, 페트병의 라벨을 떼어내고, 착실하게 소재별로 분류해 배출하는 것은 '성실한 시민'의 가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만 결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저자는 책임을 져야 할 기업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대안과 과감한 전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라고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 플라스틱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제로 운동이 더욱 정치성을 띠어야 하고, 더 많은 소비자가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개인은 실천의 첫걸음으로 소비 생활과 방식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쇼핑할 때 포장재를 쓰지 말고, 나무로 된 국자로 요리하고, 천연섬유로 된 의류를 고르고, 화장품이나 세제는 수제품으로 고르는 것 따위다.
무엇보다 재사용을 우선시하고, 플라스틱을 구매하지 않고 1주일을 살아보는 것에 한번 도전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가 소비를 줄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열린책들. 최린 옮김. 400쪽.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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