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지금 어디 가세요?" 성직자들의 속세체험기 '성지순례'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예능의 철칙 중 하나는 '반전'이다.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면 재미를 주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 예상치 못한 출연자의 등장은 예능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드라마에서 긴장감이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서 나온다면 예능에서의 긴장감은 전혀 이 상황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나왔을 때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예능 연출자들은 낯선 상황에 익숙한 출연자를 등장시키거나, 익숙한 상황에 낯선 출연자를 등장시킨다. 지금까지 세계 수많은 곳을 다녔던 나영석PD의 예능, 그 출발점이 됐던 '꽃보다 할배'가 전자에 가깝다. 유럽 여행이라는 익숙한 틀에 노년 배우들을 넷이나 출연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익숙한 상황의 낯선 사람들. 바로 MBC에브리원의 예능 '성지순례'가 후자의 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 10월31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8시30분 방송되고 있는 '성지순례'는 말 그대로, 지금 젊은이들의 유행인 '성지'를 다녀보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체험의 주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종교인들이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속세의 유행을 따르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또 스튜디오나 TV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은 이 이질적인 조합 속에서 묘한 재미를 찾는 방식이다.
이미 MC인 작사가 김이나는 이 프로그램을 가리켜 "삶이 무의미한 숏츠로 점철되는 것 같아 불안한 이들에게 건강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직자와 속세, 이를 바라보는 관찰자들의 신기한 시선 그리고 속세를 경험하며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성직자들의 한 마디가 울림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2회까지는 정재규 신부, 이예준 목사, 자운 스님이 속세를 체험했고, 3회부터는 유경선 신부, 차성진 목사, 송산 스님이 등장해 여정을 떠난다. 제작진은 '성스러운' 이 출연자들에게 '인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은 번뇌'를 상징하는 마구니의 역할로 김이나, 풍자, 송해나를 섭외했다. 그리고 이들의 중간에서 방송인인 듯, 성직자인 듯 애매한 위치를 갖고 있는 김제동이 중심을 잡는다.
일단 이들의 속세 체험기는 "어느 유튜브 콘텐츠보다 자극적"이라는 MC 풍자의 말처럼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신부와 목사, 스님이 헌팅포차를 찾고, 댄스 챌린지를 하며, 마라탕이나 탕후루 같은 요즘 젊은 세대, MZ가 열광하는 음식을 맛본다. 또한 젊은 세대가 자주 가는 곳, 자주 먹는 것, 자주 하는 것들을 체험한다. 일단 자주 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체험기는 어색하고 때로는 몸에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재미를 준다. '성지순례'의 예능적인 재미는 대부분 이러한 부적응에서 나온다.
하지만 마치 국을 먹으면 아래쪽에 건더기나 엑기스가 모여들듯, 중반부 이후부터는 조금씩 프로그램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바로 여러 화두에 대한 성직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 회 헌팅포차를 찾았던 이예준 목사는 출연진에게 "외롭고 마음이 공허한 분들이 이를 채우기 위해 이런 곳을 찾는 것 같다"고 짚었다.
방송분량 중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토론도 벌어졌다. 차성진 목사는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지만, 동성애의 존재와 인권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소신을 밝혔다. 송산 스님은 "불교적인 입장에서는 하나의 생명체를 고유의 성품으로 여기기에 문제가 안 된다. 오로지 우리의 행태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 중요하지, 좋고 나쁨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방송인 풍자가 MC로 있었기에 나름의 긴장감을 주는 요소가 됐다.
물론 젊은 성직자들의 캐릭터와 이들이 속세와 부딪치는 부분에 대해 일부 종교계에서 제기되는 우려도 있다. 우리 사회만큼 각 종교의 교리와 그 신념에서만은 물러섬이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제작진이 소재를 잘 택해야 하는 고민의 지점이 있다. 하지만 종교인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들의 스스럼없는 모습은 오히려 종교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걷어내는 순기능도 있다.
지금까지 방송에서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종교의 교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이들이 다시 속세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는 형태의 방송은 없었다. 타로점은 샤머니즘을 조장하기에 개신교와 기독교에서는 금기하는 요소이며, 절에서 하는 운동을 '절스장(절+헬스장)'이라 표현하는 것은 분명 수행의 신성함에 반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그런 재미 요소의 조절을 통해 대중이 종교와 교리에 대해 갖는 호기심을 더욱 높였다는 데 있다. 이는 성직자들의 반대편에서 지금 젊은이의 솔직한 생각을 적절하면서도 가감없이 표현하는 김이나, 풍자, 송해나 등 MC들의 역량에 기대고 있다. 김제동은 이들의 가운데에서 성직자를 가장 잘 이해하면서, 성직자인 듯한 마음 씀씀이도 보이며 차별화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일단 한국 예능계에서 진행하는 이 유례없는 실험은 종교에 관심이 없는 대중들뿐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큰 관심을 끄는 화두가 됐다. 마치 '유퀴즈 온 더 블록'이 길거리를 다니는 무정형 토크쇼에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 깊은 곳을 끌어내는 샘물로 변신했듯, '성지순례'도 그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요즘 예능답지 않게 깨달음을 주는 예능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종교와 대중, 수천 년 전부터 공생했을 이 관계에 대해 방송에서 다시 한번 건강한 공존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이라도 흥미 위주로 쏠리면 그 건강한 색채가 바랄 것이고, 의미 위주로 쏠리면 대중성을 잃어버린다. 방송가 전례 없던 이 실험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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