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구실찾아 삼만리…부디 '거리두기'라도 유지하자

2023. 11. 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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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유비무환인가, 과비유환인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윤석열 정부가 남북한이 2018년 9월에 체결한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이 합의의 백지화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최근 들어서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을 빌미로 삼으려고 했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움직임을 구실로 삼으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14일자 <한겨레>는 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할 경우 정찰 규제의 효력 정지를 시작으로, 이후 북한이 추가적으로 무력 행동을 할 때마다 맞대응으로 효력 정지를 단계적으로 추가해서, 최종적으로는 9·19 군사합의를 백지화하는 게 목표"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의 타당한 사유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

우선 군사합의에선 "군사분계선(MDL) 기준 서부 상공은 20㎞, 동부 상공은 40㎞ 상공에서 고정익 항공기의 군사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정찰위성은 이보다 훨씬 원거리·고고도에서 운용된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군사합의 효력 정지의 근거로 삼기에는 어색하다는 것이다.

또 굳이 따지자면 위 조항은 북한보다 남한에게 월등히 유리하다. 북한은 원거리·고도도 감시정찰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반면에, 남한과 한미동맹, 그리고 한미일 준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실시간 포착할 수 있는 정밀하고도 촘촘한 감시정찰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무인정찰기와 정찰위성 보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극단적인 정찰 능력의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감시정찰 능력뿐만이 아니다. 온통 관심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 쏠려 있지만, 비핵 군사력에 있어서 남북한의 격차는 현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17년 남북한의 군사력 순위는 각각 세계 12위와 18위였다. 그런데 남한은 2021~2023년 3년 연속 세계 6위를 기록한 반면에, 북한의 올해 순위는 34위까지 떨어졌다. 굳이 한미동맹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남한이 북한의 재래식 무력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유비무환'의 태세는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과비유환'이다. 이는 과도한 군사적 대비 태세가 오히려 우환을 키울 수 있다는 뜻으로 필자가 만들어본 표현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윤석열 정부가 유엔사 재활성화를 추구해온 미국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정부는 유엔사 강화와 재활성화가 대북 억제 및 억제 실패시 격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의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개입할 경우 주한미군 공백론이 불거질 수 있는데, 그 공백을 유엔사의 전력공여국들이 메우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핵잠수함과 B-52와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가 잦아지고 한미연합훈련 강화에 더해 한미일 연합훈련으로의 확대 움직임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의 핵 고도화뿐만 아니라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북러 군사협력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북러 군사협력에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의 셈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당장 걱정거리는 9.19 군사합의의 앞날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 대비 태세 강화'을 이유로 이 합의를 백지화할 경우 남북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데 크게 기여해온 안전핀 하나가 뽑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남북한의 군사적 적대감이 고조되어온 점을 감안할 때, 또 양측이 경쟁적으로 공세적인 교리를 천명해온 점을 고려할 때, 우발적 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그리고 단계적 군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남북한이 구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2019년을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좌초되었고 상호간 군사적 태세와 적대감도 높아져왔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9.19 합의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정치군사적 적대감과 공세적인 교리가 무력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거리두기'라도 유지하는 게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지난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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