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자율주행’ 추월하다 급브레이크…사고뭉치 로보택시 미래는?
잇단 사고에 고위험 전략 중단…“안전에 지름길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목표에 집착해 일을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잇따라 일어나,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구다. 미국 지엠 계열의 자율주행차 업체 크루즈가 요즘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
그동안 자율주행차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속전속결식의 공격적 행보로 일관해 온 크루즈가 잇단 사고와 논란 끝에 자율주행차 전면 운행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말았다.”
사면초가 신세가 된 크루즈가 최근 돌파구를 찾기 위해, 창업 이후 고집해온 위험 감수 전략을 안전 우선 전략으로 궤도 수정하기로 했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대기업 지엠이 자율주행차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16년 10억달러를 들여 자율주행 스타트업 크루즈를 인수하면서부터다.
크루즈는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의 자율주행차 개발자 카일 보그트가 2013년 설립한 업체다. 1985년생인 그는 13살 때 주차장의 노란색선 선을 따라가는 장난감차를 프로그래밍할 정도로 자율주행차 개발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이어 대학생 시절인 2004년엔 고등방위연구계획국(다르파) 주최의 자율주행차 경진 대회에 출전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2013년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을 설립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에 매진해온 구글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 상태였다. 구글은 지엠이 크루즈를 인수하기 1년 전에 이미 100만마일이 넘는 자율주행차 시험주행 기록을 세울 정도로 훨씬 앞서 있었다.
웨이모보다 출발이 몇년 늦은 크루즈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혼잡한 도심 주행이라는 고위험 전략을 구사했다. 한산한 도시 외곽지역에서부터 시험운행을 시작한 구글 웨이모의 전략과 대조적인 방식이다. 시험운행 지역으로 크루즈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웨이모는 애리조나 피닉스의 교외를 선택했다. 모회사인 지엠은 2022년에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고 있던 크루즈 지분을 34억달러에 추가로 인수하면서 크루즈의 공격적 전략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결국 크루즈는 주변의 안전 우려 시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월 구글 웨이모보다 먼저 ‘최초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전요원이 탑승하지 않는 완전 무인 로보택시 유료 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올해 8월엔 ‘최초로’ 하루 24시간 운행 승인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잇단 ‘최초’ 칭호의 영광은 오래지 않아 ‘독이 든 성배’가 되고 말았다.
로보택시는 운행 직후부터 잇단 소방차 방해, 보행자 충돌 등 잇단 사고와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교통당국은 일주일만에 운행 대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조처를 내린 데 이어 10월24일엔 운행 중단 명령까지 내렸다.
10월2일 밤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 교차로에서 한 여성이 크루즈 로보택시에 깔린 사고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이 여성은 교차로에서 보행 신호가 바뀐 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사람이 운전하는 다른 차량에 치인 뒤, 그 충격으로 튕겨 나간 몸이 크루즈 차량에 깔려 6m 정도나 끌려갔다.
‘운행 중단’ 극약 처방 후 태도 변화
운행 중단이란 극약 처방에 크루즈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크루즈는 이틀 후 후속 조처로 샌프란시스 외에도 텍사스 오스틴, 애리조나 피닉스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의 무인 자율주행차 운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 보유중인 자율주행차 950대 전부에 대해 리콜 조처를 시행했다. 크루즈는 10월 보행자 충돌 사고를 부정확하게 인지한 소프트웨어를 수정한 뒤 운행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와 오스틴에서 시험운행 중이던 2세대 로보택시 오리진의 생산도 중단하기로 했다.
크루즈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크루즈가 개발하고 있는 혁신적 기술을 굳게 믿는다”면서도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신뢰를 구축하는 조처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조처는 10월2일 보행자 충돌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크루즈가 초기에 취했던 태도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IT매체 와이어드에 따르면 당시 크루즈는 “로보택시의 반응 시간은 인간 운전자보다 빠른 460밀리초 이내였으며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제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의 리콜 조처는 크루즈가 전략, 기술, 대중 소통 시스템에서 결함이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사이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카일 보그트 최고경영자는 10월 말 열린 회의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를 잃는 데는 몇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즈는 최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앞으로 투명성을 높일 것이며, 이를 위해 10월 충돌사고를 검토할 로펌과 모든 안전 및 엔지니어링 과정을 검토할 독립적 엔지니어링 업체를 고용했다”고 밝혔다. 또 더 나은 크루즈를 만들기 위해 최고 수준의 안전과 투명성, 책임감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 어떤 다양한 조처들이 가능한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쟁 심한 실리콘밸리 문화에 숨은 위험
로보택시 안전 논란이 샌프란시스코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스틴에서도 몇달 전부터 소방, 경찰, 응급 서비스 기관과 주민들로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와 비슷한 비판과 불만이 제기됐다. 예컨대 경찰 당국은 자율주행차가 교통 경찰의 수신호를 인지하지 못해 업무에 지장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와이어드가 확보한 오스틴 시당국 문서에 따르면 ‘하마터면 큰일날 뻔한 사건’이 7~11월에 최소 12건 있었다. 오스틴 소방당국은 자율주행차가 소방서 주변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크루즈 회사 관계자들은 실리콘밸리 문화에 젖어 있는 크루즈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카일 보그트가 안전보다 속도를 우선시한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보그트는 웨이모와의 경쟁에서 호출택시업체인 우버가 경쟁사인 리프트를 제압한 것과 같은 ‘밀어붙이기식’으로 우위를 점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크루즈의 이번 사례는 우버가 2018년 자율주행차 도입을 서두르다 시험운행 중 사망 사고를 일으킨 것을 연상시킨다. 사고 직후 우버가 안전과 관련한 지침을 모두 뜯어고친 것도 크루즈의 대응 방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대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버는 결국 2년 후 자율주행 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우버 최고경영자 다라 코스로샤히는 시엔비시(CNBC) 인터뷰에서 “안전으로 가는 길에 지름길은 없다”면서 “규제의 틀, 안전의 틀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며, 우리 모두 시간을 갖고 구축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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