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섞이게 할 수 없다”는 생각

서보미 2023. 11. 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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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한 초등학교.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뉴스룸에서] 서보미│프로덕트서비스부장

“ㄱ아파트와 ㄴ아파트 아이들은 앞으로 ㄷ초등학교로 배정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얼마 전,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난리가 났습니다. 아이들이 내년 입학할 학교가 ㄹ초등학교에서 ㄷ초등학교로 갑자기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올라왔거든요. 곧 온 동네가 들썩였습니다.

학부모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한달 뒤면 나오는데, 갑자기 아이들 통학구역을 바꾸는 게 말이 되냐!” “둘째 아이는 형, 누나랑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하는 거냐!”

누구도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다 아는 반대의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ㄷ초등학교는 동네에서 소위 ‘기피 학교’였습니다. 신축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다니는 ㄹ초등학교와 달리 ㄷ초등학교는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 많이 다닙니다. 중국동포 아이들도 많이 다니고요.

교육지원청 담당 부서에 전화 걸어 “소문이 진짜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는지 담당자는 “그 문제는 논의조차 안 됐다고 소문 좀 내달라”며 하소연했습니다. 결국 온 동네를 뒤흔든 이번 사건은 오해가 만든 소동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겐 이 소동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올해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내년에는 정말 바뀔지도 모른다고 의심합니다. 동네 초등학교 통학구역을 새로 짜야 한다는 민원 역시 많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엔 초등학교 네곳이 가까운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두 학교는 전교생이 각각 1000명, 13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두 학교는 전교생이 각각 200명, 300명대에 불과합니다.

과밀 학교 학생들은 3교대로 급식을 하고, 원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듣지 못합니다. 작은 학교 학생들은 다양한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응력, 문제해결력을 배울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겠지요. 그러다 보니 큰 학교에서도, 작은 학교에서도 적정 학생 수를 유지해달란 학부모 요구가 끊이지 않습니다.

학교 간 균형을 어느 정도는 맞출 기회도 있었습니다. 한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하던 3년 전이었습니다. 원래 이 아파트 아이들은 큰 학교와 작은 학교로 나뉘어 배정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입주자들이 빌라 거주자, 중국동포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작은 학교에 가지 않도록 해달라며 통학구역 변경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교육지원청은 두 손 들었고요. 그 결과 기피 학교는 더 작아졌고, 선호 학교는 더 커져 버렸습니다.

우리 동네만의 문제일까요? 서울뿐 아니라 경기,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초등학교 통학구역을 두고 온갖 파열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으로 대단지 아파트 입주 때 갈등이 공론화되곤 합니다. 자녀들을 선호 학교에 배정해달라는 예비 입주자 학부모와 더는 학교를 과밀하게 만들 수 없다는 기존 학부모들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쪽으로 결론 나든지 동네에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깁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그 ‘일부’ 학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아이들을 부모의 소득 격차에 따라 나누고, 섞이지 않길 바라는 학부모들 말입니다. 그러니 선호 학교, 기피 학교 사이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기만 하죠. 그런데 그들만이 문제일까요. 자녀가 없는 주민들도 학부모 시위에 동참하곤 합니다. 집값이 학교 배정 문제에 민감하니까요.

좀 더 넓게 생각해 보면, 과연 일부 아파트 사람들만 그럴까 싶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초등학교 이름을 치면 아파트 ‘배정 단지’가 쭉 뜹니다. 이때 각 아파트 단지의 전셋값·매맷값도 함께 노출됩니다. 이미 한국에선 초등학교 ‘네임 밸류’와 부동산 가격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는 뜻 같기도 합니다. 일단 좋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근처에 있는 좋은 중학교·고등학교 학군으로, 결국엔 명문대로 진학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니 그런 거겠죠.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이 얽힌 문제를 해결할 때는 원칙이 중요할 겁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통학구역 설정엔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시·도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 교육장이 학급편제와 통학 편의를 고려해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재량 범위가 넓다 보니 “학부모·주민 민원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하나의 요소”(서울시교육청 관계자)가 되곤 한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맘대로 선 그어놓은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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