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일부 지역·필수의료 우선 배치…시장 논리 깨야 답이 있다

박현정 2023. 11. 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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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의사 인력 불균형 해소 방안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공식화했다. 다만 증원 규모 등 구체 방안에 대한 발표는 미뤘다. 조만간 규모가 발표될 의대 증원을 기본 상수로 놓고 보더라도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급증과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등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의대 정원 논의 과정에서 맞붙을 가장 큰 논쟁 지점을 세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어떻게 하면 애 낳을래? 같은 질문이네요.”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최재영(44) 교수는 지역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로 의사들을 유입시키려면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할지 묻자 ‘저출산 해법’ 같은 난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정부는 소아의료 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11월부터 심야·응급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보상(수가)을 높였다. 수가가 오르면 의료기관이 인력을 더 뽑을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처방이 밀려드는 환자를 혼자 보는 최 교수의 부담을 덜어주진 못했다. “수가 인상 전부터 반년 넘게 의사를 구하고 있지만 뽑지 못했어요. 전국 병원 중 임금이 높은 편에 속하는데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늘리기로 했지만, 추가 양성하는 의사들이 필요한 곳으로 유입되지 않으면 정원 확대는 의미 없는 대책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비수도권 6개 권역 의대가 입학 정원의 40%(강원·제주 20%)를 해당 지역 학생을 뽑도록 의무화한 지역인재특별전형을 확대하고, 수가 인상 등 보상을 강화해 자발적 유입을 독려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겨레가 취재한 소멸위기 지역 병원과 지방의료원, 비수도권 국립대병원 의사 10여명은 현재 의료체계에서 돈을 더 주는 조건만으론 필요한 의사를 구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의사 임금이 가장 낮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작성한 내부 자료를 보면, 의료 수요가 많은 65살 이상 고령층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단연 서울(20.06명)이다. 이미 초고령사회(65살 이상 인구 20% 이상)에 진입한 경북(6.08명) 의사 수가 가장 적고, 그 뒤로 전남(7.19명)·충남(7.79명)·강원(8.36명) 순이다.

의사가 적은 지역이 연봉은 더 높다. 지난해 발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를 보면, 2020년 서울 의료기관(병원·보건소 등) 전문의 연평균 소득은 2억2413만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그럼에도 서울 쏠림은 끝이 없다. 전체 의사 공급이 수요보다 적다보니 임금이 상향 평준화돼 경제적 보상보단 업무 강도나 교육환경 등이 근무지 결정을 좌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기간 비급여 진료가 많은 안과나 정형외과, 피부과 의원에서 일하는 의사 연 평균 소득은 3~4억원대였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소득 수준·거주지와 상관없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핵심 자원인 의사 인력 분배를 시장에만 맡기기 때문에 불균형이 심화한다고 짚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다가도 자유롭게 의원을 열 수 있고, (기피 과목) 전문의 지원자가 없으면 양성할 수 없는 시장 논리로 인력을 운용한다”며 “어린이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의사에게 월 얼마씩 지원하더라도 (도시로 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어떻게 소멸지역에서 일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구조에선 인구 밀도가 낮아 환자 수가 많지 않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 환자와 의사 간 물리적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과 다른 양성제도 필요”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 양성한 의사들을 필요한 곳에 배치하기 위해선 결국 시장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배경이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의대 정원 확대로 늘어나는 의사 일부는 지역 종합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 같은 급히 충원이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별도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우선, 사립대에 배정하는 추가 정원의 경우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지역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거치도록 해 지역 의료를 접할 기회를 만드는 식이다. 국립대 의대 정원 확대엔 일정 기간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만 의사 면허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더 강력한 조건을 걸자고 제안했다. 의사들이 지역·필수의료 영역에 머물게 하기 위한 개선책으로 공공의대 신설도 거론되는데, 임 원장은 민간 대형병원이 확보한 의료 역량과 최신 의학까지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세밀한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 확대엔 선뜻 찬성하지 않더라도 양성 과정에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민간병원 의사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소멸 위험이 큰 지역 병원의 한 의사는 “기존 의대와 다른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아 100% 국비로 교육시키고 의료취약지에서 10년 정도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면서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공공보건의료 사관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늘어나는 의대 정원을 지역 의료기관이 서로 역할을 나눠 협력하도록 이어주는 매개체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지금은 모든 병원이 규모나 지역 상관없이 환자를 놓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대학이 아닌 지역 단위로 의대 정원을 배분해 의대와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지역 병원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전공의를 함께 양성하고 그 성과를 평가해 공동 인센티브를 주자”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의료를 책임지도록 그에 맞는 권한과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람과 즐거움을 줄 순 없을까”

의사를 필요한 곳에서 의무적으로 환자를 보게 한다해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역·필수의료 분야 진료를 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즐겁고 보람찰 수 있도록 하는데도 머리를 모아야 하는 까닭이다. 다만 이는 지금의 의료 틀을 흔들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그동안 민간 의료기관이 서비스 공급을 주도하면서 의료행위 등에 가격(수가)을 매겨 진료량에 따라 건강보험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행위별 수가제를 토대로 성장해왔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병상 수나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가장 많다. 다른 선진국보다 병원을 찾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응급환자는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진료시간 역시 충분하지 않다.

한겨레가 만난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지방자지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병·의원이 환자 증상에 따라 역할을 나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의료비 급증을 억제하면서도 시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지역 상급종합병원(3차)과 이런 병원이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보다 증상이 덜한 환자를 보는 종합병원(2차)에 실력있는 의사를 충분히 배치해 서울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환자 발걸음을 돌려 세워야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역량을 쌓고 좋은 의사를 기르는 선순환도 가능하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지금 병원·의사가 수익을 거두는 구조는 건강하길 원하는 환자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그는 “사람이 자주 아프면 아플수록 의사가 돈버는 구조”라며 “고혈압·당뇨병 등은 평소 관리를 잘 받아 합병증에 안 걸리는 게 환자에게 좋은건데 자주 병원에 오고 평소 관리가 안돼 합병증이 많이 생길수록 의료 수익이 더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건강보험 재정을 진료량에 따라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게 아닌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킨 성과를 기반으로 보상하도록 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지역 의사들이 환자 가까이에서 건강을 챙겨면서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의미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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