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정신 담은 노란봉투법…거부권 행사 정당성 없다
[‘노란봉투법’]
[왜냐면] 김종철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드디어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줄곧 반대했던 여당과 경영단체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고 있다. 반노동을 국정 기조의 축으로 삼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호응할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안을 재의결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므로 국회 의석 분포상 노란봉투법은 양곡법·간호법의 전철을 밟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 국회의 다수파가 의결한 법률안을 소수파가 거부권 제도를 통해 폐기할 만한 정당성이 있는지 주권자 국민의 입장에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거부권의 대상이 될 노란봉투법은 사실 노동계에서 주장해온 원안에서 상당히 후퇴한 수준이다. 애당초 논의했던 근로자 범위 확대나 손해배상 총액 제한 등 핵심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일부 급진 노동계로부터 “실속 없는 입법”이라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위헌 논쟁을 최대한 피하고 국제노동협약의최소 기준만이라도 관철하려는 실용 노선을 채택한 결과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의 주요 개정 내용은 노동3권을 명문화한 우리 헌법 제정자의 결단에 지극히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궁색하다.
사용자 범위를 원청 사용자까지 확대하는 것은 헌법에 노동3권을 보장하는 기본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원래 노조에 의한 단체교섭을 불법으로 보았던 근대 시민 법질서가 초래한 극심한 경제 양극화와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를 극복하기 위해 근로자의 교섭력을 사용자와 대등한 수준으로 보장하는 것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승격시킨 것이 노동3권이다. 따라서 노무를 외주화해 원청과 하청으로 법인격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헌법 정신과 조화되기 힘들다. 고육지책으로 사법권이 나서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법률 관계를 중심으로 노동3권을 인정하는 전향적 법률 해석을 발전시켜 왔고 이번에 판례의 발전을 입법화한 것이다. 과세 행정이 형식적 법률 관계를 불문하고 실질 과세의 원칙을 발전시킨 것처럼 근로 관계에서도 실질적 근로 관계가 있는 곳에 대등한 교섭력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 쟁의의 범위를 1996년 날치기 노동법 이전으로 환원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 노동 쟁의는 노동3권의 보루이며 국가의 의무는 그 실현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노조법이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에 관한 쟁의”보다 훨씬 좁게 한정함으로써 노사 관계를 당사자의 자율로 해결할 여지를 극도로 좁히고 불법 쟁의를 양산해온 것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쟁의 근로자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을 극단적 선택의 외길로 내몰아온 ‘공동책임의 법리’(부진정연대책임)를 완화해 배상 의무자별로 책임 비율을 정하도록 한 개정도 위헌적 악법을 법 해석으로 제한하는 대법원 판례의 발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헌법이 특별히 개별적인 기본권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는 의의는 노사 관계를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적 자치원칙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권에 대한 적극적 보장 의무에 따라 단체주의를 보완한 노동법의 법리에 따라 대응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민사법의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불법 쟁의로 인한 피해자가 사용자이고 쟁의 근로자가 가해자일 수 있지만, 애당초 불법 쟁의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노조법 조항을 둔 위헌적 상태를 배경으로 볼 때 노동3권을 무시해 부당 노동행위를 조장하는 사용자를 가해자로, 노동기본권을 부정당해 불법 쟁의로 내몰린 근로자를 피해자로 볼 수 있는 복합적 상황이 노사 관계의 특성이다. 더구나 원칙적으로 면책해야 할 쟁의로 인한 손해배상을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완화시키는 방식으로 더 손쉽게 가능하게 하는 법제야말로 노동기본권을 존중하는 헌법과 조화되기힘든 것이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실질적 노사관계를 부정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가압류제도를 오용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훼손해온 현행 노조법을 헌법 정신에 따라 바로 잡은 것이다.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최소 기준을 담았을 뿐인 이 법이 거부권의 남용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주권자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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