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돋울때… 잡내잡을때… 초를 쳐라![이우석의 푸드로지]

2023. 11. 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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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만능 아이템 ‘식초’
곡물·과일 발효해 만든 조미료
비타민 풍부하고 피로해소 효과
탄수화물, 포도당 전환도 늦춰줘
소화제·미용식품 등으로 ‘각광’
중국 흑초·유럽선 발사믹 즐겨
한국은 회 등 무침에 주로 넣고
비린내 잡거나 살균에도 효과적
면요리에 뿌리면 쫄깃한 식감도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난데없이 식초가 인기다. 설염초장(설탕, 소금, 식초, 장)이란 고대부터 전해진 4대 조미료에 당당히 속하지만 원래 한국인이 그리 즐기지 않았던 것이 식초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과 미용 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이가 식초를 마시고 뿌려대고 있다. 특히 애플 사이다 비니거(Apple Cider Vinegar)는 트렌드 아이템이 됐다. 귀네스 팰트로, 제니퍼 애니스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미용 관리를 위해 즐겨 마신다는 이유로 그 열풍이 시작됐다.

체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당 상승을 억제한다는 이른바 웰니스 음료로 각광받고 있는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사과주를 이용한 식초다. 우리네 막걸리식초와 원리가 같다. 예전에도 홍초와 흑초 등의 식초 마시기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애사비’란 애칭을 얻을 만큼 사랑받고 있는 애플 사이다 비니거의 인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반도에 식초의 화양연화라도 찾아온 것일까. 갑자기 겨울 문턱으로 접어든 환절기, 비타민 C가 많아 건강에 좋다는 새콤한 맛에 대해 알아봤다.

신맛(酸味). 대표 맛 중 하나다. 새콤한 맛을 유독 좋아하는 이들도 많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침샘이 자극되고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신맛에 기겁하는 이들도 많다. 그나마 어렸을 때는 신맛을 즐기다가 나이가 들면 싫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주변의 경험담을 들어보자면 실제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노화가 진행돼 뼈가 약해지면 본능적으로 신 것에 고개를 젓게 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신맛은 오렌지, 레몬, 라임 등 귤속의 과즙에 많이 들었다. 과일과 곡물이 발효하며 신맛을 내기도 한다. 이 원리를 활용해 만든 것이 식초다. 곡물과 과일의 당분은 알코올이 되고, 또 박테리아는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바꾸는데 이것이 식초다. 술을 담그다, 혹은 저장을 잘못하면 식초가 된다. 그래서 식초(vinegar)의 어간에 포도주(vin, 프랑스어)가 들었다. 성경에도, 그리스와 로마 시대 기록에도 등장한다. 안전한 물을 마시기 위해 식초를 타서 먹었다고 한다.

고대인들도 일찌감치 즐겼던 식초는 비타민 등 영양도 많지만 그 살균력과 시큼한 향을 활용해 보존제, 방부제, 탈취제, 소화제, 식욕촉진제 등 여러 용도로 써왔다. 물론 영양학적으로 어떤 성분이 있었는지 화학적으론 몰랐겠지만 그 신비로운 효능과 맛엔 단단히 주목했다. 식초의 아세트산은 당질이 포도당으로 전환되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탄수화물과 당분 섭취량이 많은 식습관 탓에 당뇨병이 성행하는 한국에선 귀가 솔깃할 소식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다시 식초를 너도나도 찾는 세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먼 옛날에 시작됐던 것이 다시 도래한 것뿐이다. 중국의 흑초(노천추), 유럽의 발사믹 식초(balsamic vinegar) 등 세계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식초를 먹는다. 특히 중국인과 영국인들은 식초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 중국 요리에서 식초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 조미료이며 영국인은 자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요리인 피시 앤드 칩스를 비롯해 각종 메뉴에 식초를 듬뿍 친다. 식탁에 항상 식초병이 놓여 있다. 이에 비해 한식에선 식초의 존재감이 미약하다.

새콤하게 무친 파무침. 한식에서 식초는 주로 무침에 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매일같이 먹고 있는 것이 식초다. 회무침, 초무침 등 무침 요리에 많이 들어가며, 알고 보면 반찬에도 많이 쓴다. 마요네즈와 케첩 등 다양한 소스에도 식초가 들어간다. 생선회나 고기, 순대를 찍어 먹는(호남식) 초고추장에도 식초가 들었다. 라면에 넣으면 좋다는 이들도 있다. 특히 초고추장으로 섭취하는 식초의 양이 만만찮아 보인다.

서울 용산의 해산물 식당 ‘울엄마제철맛집’에서 내는 초고추장.

예로부터 ‘윤집’이라 불렸던 초고추장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국인의 양념(소스)이다. 고종의 수라상 기록에도 어엿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세기 ‘시의전서’에 “민어는 윤집(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설탕과 식초, 고추장을 섞어 새콤달콤한 맛으로 생선 등의 해산물과 육류 이외에도 곡물, 채소 등과 잘 어울리는 까닭이다.

특히 생선이나 해물 비린내를 없애는 데 탁월해 횟집에서 많이 쓴다. 소매점에서 생선을 사다가 상차림비를 내고 먹는 가게는 아예 초장집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늘이나 생강을 넣으면 더욱 진한 풍미로 식탁을 장악한다. 이렇게 만든 초장에 밥만 비벼 먹어도 맛이 좋다. 초장에 든 식초의 새콤한 맛은 식욕을 돋우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세균을 무력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식초의 살균력에 기대는 마음이다.

입맛을 돋우는 까닭에 호남 지방에선 순대나 족발, 수육, 김밥, 두릅, 상추쌈에도 초고추장을 쓰는 경우가 있다. 영남 지방에는 파전 등의 전 종류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다. 균이 번식하는 여름철에는 알게 모르게 식초를 매일같이 먹을 때가 많다. 오이무침이나 오이소박이를 담글 때 새큼하게 식초를 넣기도 하며 여름철 냉국에는 어김없이 식초가 들어가는 까닭이다.

탕수육에도 식초가 들어간다.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식초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중국 음식점이다. 생 양파와 단무지를 주는 ‘중국집’이라면 늘 식탁에 간장병과 식초병이 함께 놓여 있다. 앉자마자 으레 양파와 단무지에 식초를 두르는 것이 클리셰인 까닭이다. 그래야 맛이 살아난다 믿는 이도 있고 살균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같은 방식은 영양 균형이 딱 맞다. 중국 음식점에는 밀가루 음식 메뉴가 많고 설탕도 많이 쓰는데, 식사 전에 식초에 적신 양파나 단무지를 먼저 집어먹고 나면 혈당 관리에 도움이 된다.

면에 식초를 뿌리면 씹는 맛이 살아나는 경남 창원 ‘황보밀면’의 밀면.

식초를 면에다 뿌리면 단백질인 글루텐 성분이 응고되며 좀 더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어 이렇게 먹는 이도 많다. 메밀이 주성분인 소바나 냉면도 마찬가지.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들에게 “젓가락으로 면을 들고 그 위에 식초를 뿌리고, 육수에 겨자를 치라”고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교시’하기도 했다.

단백질이 응고되면 풍미도 좋아진다. 특히 부산에선 맑은 대구탕이나 복국에 항상 식초를 뿌려 먹는데 이때 투명한 국물이 식초와 닿자마자 금세 뽀얗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한 맛이 한결 풍성해진다. 나트륨 과다 섭취가 걱정될 때 식초는 살짝 짠맛을 내는 효과로 소금을 대신할 수 있어 유용하다. 신맛이 아니라 짠맛도 함께 품었기 때문이다.

식초는 효능도 많다. 식초의 초산은 근육통의 원인인 근육 내 젖산을 분해해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음식물 섭취 시 몸에 이로운 무기질을 흡수하기 좋도록 해준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다가 평소 산성이지만 체내에선 알칼리성으로 바뀌는 터라 체질 개선에 좋다. 음식을 장기 보존할 때에도 쓰인다. 식초를 넣어 재우는 ‘시메사바(고등어초회)’ 등의 초절임은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대체 불가한 보존 기술로 쓰였다. 따지고 보면 초밥이나 우리 식해 역시 재료로부터 식초를 만들어내 보존성을 높인 것에서 기원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식초는 주정을 발효시킨 것이다.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주정 발효 식초는 일명 화이트 식초라고도 부른다. 시중에는 화이트 식초에 사과, 현미 등 농축액을 섞은 제품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반면 중국 흑초는 쌀을 발효시켜 만든다. 술을 담그듯 식초도 정성껏 항아리에 담가 먹는다. 건강에 좋다는 인식 덕분에 갖은 요리와 소스에 쓰고 즐겨 마시기도 한다. 실제 곡물로 빚은 식초는 비타민 등 영양가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막걸리를 발효시킨 막걸리식초가 있고 서양에는 와인 제조용 포도로 빚은 발사믹이 있어 천연 식초의 명맥을 잇고 있다.

사실 식초는 만들기 어렵지 않다. 술을 담글 때 쓰는 재료는 모두 식초가 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자가 제조도 가능하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해가 되는 법. 식초는 소금처럼 하루 권장 섭취량이 정해져 있다. 산도에 따라 다르지만 체중 70㎏ 기준 약 35㎖ 정도(1㎏당 0.5∼0.8㎖)가 적당하다. 몸에 좋은 식초라지만 많이 먹으면 식도 등 소화기 계통에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맛도 나빠진다. ‘초를 친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초를 적당량 즐긴다면 보다 건강한 겨울을 날 수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맛볼까

◇산라탕 = 쏸라탕(酸辣湯)이라 한다. 말처럼 시고 맵다. 매운맛을 즐기는 쓰촨(四川)성 음식으로 고추기름과 흑초를 넣어 끓인다. 살짝 시큼한 것이 우리 김치찌개 맛과 비슷해 입에 맞다. 해장으로도 좋다. 여느 중국 음식점에선 팔지 않는다. 일일향 을지로점은 강남에서 유명한 일일향이 최근 서울시청 근처에 오픈한 집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어향동고를 비롯, 다양한 요리를 판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125 DGB 3층. 1만8000원.

◇마제소바 =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유명한 ‘타이완 마제소바’가 한국에 진출해 인기를 얻고 있다. 설명에 나고야도 들어가고 타이완도 들어가니 알쏭달쏭하다. 현지에선 ‘대만식’으로 유명했는데 이게 한 번 건너오니 ‘나고야식’이 됐다. 아무튼 고기 고명에 쪽파 등 채소를 잘게 썰어 넣고 소스에 굵은 우동면을 비벼 먹는 방식이다. 일본식 자장면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식탁에 비치된 다시마 식초를 한 번 둘러 먹으면 풍미와 식감이 훨씬 좋아진다. 멘야하나비 합정.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7안길 14 1층. 1만1000원.

◇피시 앤드 칩스 = 제주 모슬포항 바닷가에 있는 글라글라하와이는 달고기를 튀겨 만든 피시 앤드 칩스를 판다. 달고기는 예사 흰살 생선보다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난다. 바삭하게 튀겨낸 생선튀김은 맥주 안주로 딱이다. 비록 상호는 하와이, 장소는 제주도지만 ‘영국인처럼’ 식초와 소금을 뿌려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제주 밤바다의 청량한 공기가 분위기와 맛을 배가시킨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항구로 70. 1만7000원.

◇밀면 = 냉면에 식초를 뿌리면 맛이 좋아진다는 것은 얼핏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겠지만 밀면이 더욱 그렇다. 면발에 살짝 식초를 뿌리면 대번에 저작감이 살아난다. 밀에 글루텐이 더 많이 든 까닭이다. 발상지인 부산이야 워낙 많은 밀면집이 있으니 생략하고 창원시 상남동에 위치한 황보밀면은 보기 드문 얇은 면발이라 특별한 식감을 내는 밀면을 판다. 시원한 육수에 말아낸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치아에 닿는 느낌이 좋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 마디미로31번길 4. 8000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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