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탄생시킨 오케스트라 하모니…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 남자의 클래식]

2023. 11.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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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의 작품들을 꼽는다.

모두 제각각 매력이 넘치는 작품들이지만, 당대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이자 브람스의 지지자인 에두아르트 한슬리크(1825∼1904)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두고 "브람스와 요아힘의 우정의 나무에 열린 잘 익은 열매"라는 평을 남긴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878년 브람스는 마침내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고 가장 먼저 요아힘에게 우편으로 악보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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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1855년 브람스· 요아힘 첫만남
서로의 연주에 깊은 감명 받아
1877년 작곡 결심,1년뒤 완성
1879년 협연으로 초연 대성공
요아힘, 협주곡 알리는데 온 힘

흔히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의 작품들을 꼽는다. 모두 제각각 매력이 넘치는 작품들이지만, 당대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이자 브람스의 지지자인 에두아르트 한슬리크(1825∼1904)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두고 “브람스와 요아힘의 우정의 나무에 열린 잘 익은 열매”라는 평을 남긴 바 있다.

1850년 17세의 브람스는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피아노 반주자로 채용된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852년부터 브람스는 레메니와 함께 연주 여행을 다니게 되는데, 이를 통해 브람스는 값진 음악적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만남들을 갖게 된다. 그중 가장 소중한 만남 중 하나가 22세 무렵이던 1855년, 당시 독일 하노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1831∼1907)과의 만남이다.

첫 만남에서 요아힘은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브람스 또한 요아힘의 명연주에 매료됐다. 이를 계기로 브람스는 요아힘과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됐고 또 하나의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언젠간 요아힘을 위해 멋진 바이올린 작품을 하나 작곡해내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1877년, 브람스는 독일의 남서부에 위치한 바덴바덴에서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연주를 듣게 된다. 이날 공연된 작품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은 브람스는 이날의 영감을 계기로 마침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작곡 과정은 순조로웠다. 사실 브람스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보다 더 먼저 바이올린을 배운 바 있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와 반주자로 호흡을 맞추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전반에 대한 이해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878년 브람스는 마침내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고 가장 먼저 요아힘에게 우편으로 악보를 부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람스는 요아힘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브람스, 지금 자네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바이올린 독주 부분을 보고 있는데, 내 생각엔 몇 군데는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아. 조만간 만나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세.”

하지만 브람스는 이런 요아힘의 조금은 비판적인 응답과 제안에 크게 반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작품에 수정은 있었다. 원래 4악장으로 작곡한 작품에서 중간의 두 악장을 빼 버리고 새로운 ‘연약한 아다지오’ 악장을 완성했지만, 이는 요아힘과의 상의를 통한 것은 아니었다. 요아힘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수정된 악보를 1878년 12월 12일에 받아보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미 잡혀 있는 초연의 날짜가 그 이듬해인 1879년 1월 1일이었단 사실이다. 그러니까 요아힘은 자신의 의견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수정된 악보를 받았고, 초연까지 남은 연습 기간은 불과 20일도 채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간의 음악적 존경심과 우정은 남달랐다. 요아힘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고, 마침내 1879년 1월 1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브람스의 지휘 아래 요아힘의 협연으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초연이

이뤄졌다. 초연은 환호 속에 대성공으로 마무리됐고, 요아힘은 이후에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 작품을 연주해 곡을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계기도, 작품의 초연도 그리고 그 이후 작품이 알려지는 데까지 두 사람의 우정에 의한 것이었기에, 한슬리크는 “브람스와 요아힘의 우정의 나무에 열린 잘 익은 열매”라고 평한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의 음악을 두고 클라라 슈만이 남긴 “단단한 껍데기 속에 담긴 가장 달콤한 열매”라는 말처럼 오케스트라가 상당히 두텁게 감싸 안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때론 대비를 이루며 아름다움의 절정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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