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 입문 2년 만에 AG 메달…성장통 뒤 찬란한 서른 살 꿈꾼다

정인선 2023. 11. 1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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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육상 ‘깜짝 기대주’ 김태희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최초로 여자 해머던지기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김태희(이리공고·18)가 지난달 19일 오전 전북 익산종합운동장에서 해머던지기 자세를 해보고 있다. 익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찌릿찌릿한 성장통 뒤엔 어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름마저 생소한 해머를 처음 손에 쥔 지 2년여 만에 국내 기록을 수차례 경신하더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첫 여자 해머던지기 동메달까지 손에 넣은 김태희(18·이리공고)는 여전히 자라고 있다.

김태희는 지난 9월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해머던지기 결선에서 64m14를 던져 시상대에 올랐다. 왕정(71m53), 자오지에(68m44·이상 중국)에 이은 3위였다. 지난달 19일 전북 익산 이리공업고등학교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태희는 “(성장통으로 추정되는) 허리 통증 때문에 여름 내내 잠도 깊이 들지 못하고 제대로 된 훈련 대신 보강 훈련만 하느라 불안했는데, 연습 때보다 훨씬 좋은 기록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태희는 2년 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해머가 뭔지 몰랐다. 초등학교 때 포환던지기 선수였던 오빠를 따라 운동에 입문해, 2021년 원반던지기 선수로 전남체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출전한 대회들에서 중학교 때보다 크게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주변 권유로 투척에 강한 이리공업고등학교로 전학해, 해머던지기로 종목을 바꿨다.

김태희는 “새로운 것을 하는 게 겁나기도 했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길이 이것(운동)밖에 없었다. ‘끝까지 하면 되겠지’ 싶어서 계속했다”고 말했다. 처음 제자리에서 해머를 던져 보니 30m 정도 날아갔다. 두 달 뒤 45m까지 기록이 늘더니, 그해 말 본격적인 겨울 훈련을 받으며 50m를 넘기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전국 규모 대회들에서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5월 케이비에스(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에서 58m84를 던져 박희선이 2010년 쓴 국내 여고부 최고 기록(57m74)을 13년 만에 갈아치웠고, 6월(59m97)과 7월(61m24)에도 자신이 쓴 기록을 차근차근 깨나갔다.

불과 두 달 뒤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기록을 3m 가까이 늘여, 강나루가 2012년 쓴 한국 기록(63m80)까지 넘어섰다. 김태희는 “빨리 회복해야 빨리 돌아온다는 생각에 매달린 보강 운동이 뜻밖의 성적을 내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최진엽 이리공고 코치는 “다른 종목으로 기본 체력이 이미 갖춰져 있었던 데다 키(180㎝)가 크고 팔다리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어 원심력이 강하고, 다른 선수들에 비해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덕분에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장판이 닫힌 뒤 본격적인 근력 훈련을 할 수 있게 되면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세계적인 성인 선수들과 겨뤄 본 경험은 김태희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김태희는 “이번에 1등 한 중국 선수를 이겨서, 다음엔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 올림픽 출전을 위한 기준 기록인 68m를 우선 넘기고, 세계 신기록(82m98)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목표에 언제쯤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김태희는 “서른 살 정도”라고 답했다. “투척이 다른 종목보다 수명이 길거든요. 남자부 해머던지기 이윤철 선수도 마흔이 넘었는데, 2002년부터 올해까지 20년째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놓치지 않고 있어요.”

김태희는 더 나은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개선할 점으로 정신력과 마음가짐을 꼽았다. “연습이 마음처럼 안 풀리는 날에는 화가 나서 코치님이 말을 걸어도 온종일 대답도 않고 짜증을 부리기도 하는데, 돌아서면 후회가 돼요. 김연아 선수의 강인한 정신력과, 우상혁(육상 높이뛰기) 선수의 실패 해도 늘 웃는 마음가짐을 닮고 싶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옹골찬 김태희였다.

익산/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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