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스포츠가 온다… 타이거 우즈와 맥킬로이가 만든 미래 스크린 골프[홀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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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합의된 규칙과 규격으로 진행됩니다. 간혹 유도처럼 도복 색상이 바뀌거나, 경기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 야구의 투구 시간을 제한하는 것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만 이 역시 오랜 논의와 공감대를 얻어 이뤄지기 마련이죠.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경기 방식을 아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인 셈입니다. 6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골프는 복장부터 클럽 형태와 숫자, 공의 위치에 따른 처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스포츠보다 복잡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런 골프의 개념을 바꾸려는 도전이 있습니다. 바로 ‘투모로우(TMRW) 스포츠’라는 단체가 만든 스크린 골프 리그 ‘TGL’입니다. ‘골프채로 홀컵을 향해 공을 쳐서 집어넣는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만 그대로입니다.
내년 1월9일 시작해 4월까지 진행되는 이 리그에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 김주형을 비롯한 프로 골퍼 24명이 참여합니다. 뉴욕 메츠 구단주 스티브 코헨, 애틀랜타 팰컨 구단주 아서 블랭크 등이 구단주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들이 자신 있게 골프를 재정의하겠다고 큰소리치는 배경에는 레이더 추적기와 고해상도 카메라, 시뮬레이터, 거대한 로봇 그린 같은 첨단 기술이 있습니다. BBC는 “게임과 실제 프로스포츠를 통합하려는 가장 야심 찬 노력”이라고 했습니다.
◇프라임 타임에 가능한 골프 라이브 중계
TGL의 근거지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에 있는 돔구장 소파이(SoFi) 센터입니다. 미국 핀테크 회사 소파이는 이 시설 구축에 5000만 달러(약 660억원)를 투입했습니다. TGL을 처음 구상한 것은 NBC 방송 스포츠 미디어 담당 임원이자 현 TMRW 스포츠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맥칼리입니다.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프로그램인 ‘선데이 나이트 풋볼’의 책임자였던 그는 2019년부터 골프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던 가상(VR) 골프, 이른바 스크린 골프를 프로 대회에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골프 대회가 열리는 며칠 동안 TV 프로그램 전송에 최소 100만 달러가 소요된다”면서 “몇 번의 번개가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드는 것도 흔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골프는 낮에 야외에서 진행되는 스포츠입니다. 스포츠 중계에서 가장 중요한 저녁 시간대 ‘프라임 타임’에는 라이브 중계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맥칼리는 2020년 골프 시뮬레이터 제조업체 풀스윙의 라이언 도터스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냅킨에 그림을 그려가며 하이브리드 골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2021년 1월에는 타이거 우즈를 만나 90분 동안 사업을 설명했습니다. 매킬로이를 비롯한 올스타급 프로 골퍼를 잇따라 영입했고 “당신의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참여하겠다”는 답을 받습니다.
◇아이맥스 화면에 무한한 시점 가능
맥칼리는 단순히 스크린 골프를 크게 키우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관련된 기술 기업을 모두 모아 올랜도에 테스트 시설을 지은 뒤, 세계 랭킹 17위의 유명 골퍼 캐머런 영을 영입했습니다. 영은 전직 골퍼 로베르토 카스트로와 함께 각종 첨단 기기 최적화를 주도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TGL에는 모든 곳에 기존 골프와는 다른 요소가 도입됐습니다. 기존 스크린골프 스크린 크기의 20배에 이르는 4K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이 특별 제작됐습니다. 와이어드는 “바로 앞에 있는 스크린에 공을 치는 것과 달리 멀리 떨어진 스크린으로 공이 날아가는 과정을 상당 부분 보게 된다”면서 “이는 선수의 감각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골프공의 외관과 타격감은 그대로지만 특수 소재를 사용해 레이더가 공의 회전을 더 쉽고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게 했습니다.
샷과 공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역시 새로 개발했습니다. 이 덕분에 실제 플레이만큼 생생한 장면을 더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공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공의 시점에서 날아가는 과정을 중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TGL은 최고 수준의 골프를 보여주기 위해 실제 잔디와 벙커도 구현했습니다. 특히 홀컵에서 50야드 이내에 공이 들어갈 경우 90t 무게의 거대한 콘크리트 무대가 정교하게 움직이면서 퍼팅 그린을 만들어냅니다. 에어백과 함께 작동하는 189개의 액추에이터 덕분입니다. 경기 중에는 선수의 샷에 대한 속도나 발사 각도, 회전 등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선수 심박수도 실시간 중계됩니다.
◇18홀 공식까지 깨
TGL은 자신들이 골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스포츠가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소파이 센터 관중석은 2000석입니다. 골프 대회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골퍼 뒤를 쫓아다니는 기존 갤러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샷 하나하나에 마치 야구장의 투구와 타격처럼 열광하는 소리가 넘쳐날 겁니다. 샷마다 장면을 바꿔가며 다른 홀에 있는 사람을 보여주는 대신 같은 자리에서 1대 1 또는 팀별 대결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면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 골프는 계속 걸어가면서 18홀을 이동해야 하고, 이 과정을 단축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골프 중계가 길어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맥칼리와 TMRW 스포츠는 이동 과정을 모두 생략하면서 한 경기가 2시간 내에 끝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프라임 시간대 2시간’이라는 스포츠 중계의 성공 공식에 적합하다는 것이죠.
심지어 18홀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을 파악한 뒤 3홀을 버리고 게임을 15홀로 설계했습니다. 매 샷에 40초 시간제한도 뒀습니다. 시간을 넘기면 팀에 1벌타가 돌아갑니다. 6개 팀은 4명씩으로 구성되고 각각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6개 도시를 대표합니다. 시즌은 15라운드, 마지막에 2주간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이 가려집니다. TGL이 골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바꿀지, 골프라는 스포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현실을 혼합하려는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의 경쟁 속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TGL이 성공하고, 새로운 시도가 늘어날수록 혼란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스포츠이고, 어디부터가 비디오 게임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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