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프로당구 선수란다" 눈물의 우승 소감, 1538일 기다린 최원준의 감동 스토리... 위마즈 잡고 통산 2승 '반짝선수' 오명 떨쳤다 [PBA]
'전북 1번'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는 PBA 출범 후 3번째 대회 만에 정상에 오르며 '익산 당구'의 자존심을 지켰으나 이후 128강 탈락만 9차례 겪었다.
그래서 더 완벽한 반전 드라마였다. 최원준은 1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PBA 6차 투어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결승전(7전 4승제)에서 비롤 위마즈(튀르키예·웰컴저축은행)를 세트스코어 4-2(15-5, 14-15, 10-15, 15-3, 15-9, 15-2)로 역전승을 거뒀다.
첫 우승 후 다시 정상에 오르기까지 무려 4년 2개월, 1538일이 걸렸다. 그 사이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승자라는 기대감 속 이후 대회들에 출전했지만 너무도 쉽게 생각했던 첫 우승 같지가 않았다. 무관의 기간이 길어졌고 초반부터 떨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반짝 우승을 했던 선수'라는 평가가 그를 괴롭혔다.
이번 대회 최원준은 어딘가 달라보였다. 128강과 64강을 연속 셧아웃 승리로 통과했다. 32강에서 올 시즌 개막전 우승자이자 '튀르키예 간판' 세미 사이그너(휴온스)마저도 3-0으로 완파했다. 김영섭과 김현우를 잇따라 꺾은 그는 4강에서 지난 대회 우승자이자 한국 3쿠션의 간판 최성원(휴온스)과 격돌했다.
2세트까지 연속으로 따내며 결승 진출 청신호를 밝혔으나 상대는 역시나 최강자였다. 3세트를 2이닝 만에 패한 뒤 흐름이 넘어갔다. 세트스코어 2-3으로 역전이 됐다.
4세트에도 고전했다. 최성원이 꾸준히 점수를 내며 14이닝 9-14로 매치포인트에 선착했다. 최원준의 집중력이 빛났다. 마지막 찬스에서 6점을 몰아치며 승부를 7세트로 가져갔고 7세트 11-8 승리를 거두고 개인 2번째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튀르키예 강호이자 우승자 출신 위마즈. 1세트는 최원준이 물오른 감각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초반 3이닝을 공타로 돌아섰지만 4이닝부터 5-6-4점 장타 행진을 펼치며 먼저 15점을 채웠다.
최원준이 절치부심했다. 4세트 선공을 잡은 그는 첫 이닝에 8점을 몰아치며 3이닝 만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5세트도 단 6이닝 만에 따낸 최원준은 6세트 4점-4점-3점-4점을 내며 위마즈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우승을 확정했다.
챔피언 샷을 성공시킨 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최원준은 시상식 후 중계방송을 통해 그의 소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최원준은 "반짝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내 이지숙씨도 좀처럼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어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가족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자신의 직업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딸들을 향해 "서영아, 민아야, 아빠는 프로당구 선수야. 그 전엔 너희가 아빠의 우승 트로피에 과자도 넣고 장난감도 넣으며 놀아서 잘 몰랐을 텐데 이번에 너희가 직접 와서 봤듯이 아빠는 계속 훌륭한 당구선수가 될게"라고 자랑스런 아버지로서 어깨를 당당히 폈다.
4년 2개월 만에 다시 우승자 인터뷰를 하게 된 최원준은 그만큼 할 말도 많았다. 전북 최고 선수에서 전국구 스타로, 다시 깊은 슬럼프를 거쳐 우승자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길었다.
PBA에 따르면 최원준은 우승자 기자회견에서 "PBA 초창기 때는 자신감이 있었고 당구도 많이 쳤는데 우승하고 나서부터 지키는 게 어렵다는 말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그로 인해서 슬럼프를 많이 겪었다"며 "큐질부터 해서 모든 게 아무것도 안 됐고 스폰서도 탓하고 큐스폰서도, 나 자신을 탓했다"고 돌아봤다.
우승 후 다음 시즌 출범한 PBA 팀리그에서 블루원리조트의 일원으로 뛰었지만 한 시즌 만에 방출됐다. 개인리그는 물론이고 팀리그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팀리그에서 뛰는 다른 선수들이 선수 생활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최원준은 다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당구장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며 틈틈이 연습을 했지만 손님 응대를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동탄으로 올라와 생활하며 주말엔 10살 서영, 7살 민아 두 딸을 돌보기 위해 익산으로 향했다. 어찌보면 제 기량을 되찾기 어려운 게 당연해보이는 환경이었다.
악재가 겹쳤다. 아들의 당구선수 생활을 못마땅해 했던 아버지는 그의 첫 우승 이후 트로피를 직접 가져갔고 이는 최원준에게 더 없는 뿌듯함이었다. 이후 슬럼프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던 그의 아버지의 아들이 다시 정상에 서는 것을 보고 싶다는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해 담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부진은 이어졌고 '반짝 선수'라는 오명은 그를 더욱 괴롭혀왔다. 결국 정신력이 버티지 못했고 멘탈 전문 대학교수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흔들렸다.
최원준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꼭 한 번 더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다. 아버지께 트로피를 바치고 싶다"고 아쉬움을 나타냈으나 자녀들에게는 확실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첫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데 둘째는 잘 몰랐다. 하도 많이 지다보니 미리 '당구를 치면 질수도 이길수도 있는 것'이라고 세뇌를 시켜놨다"는 그는 "최성원 프로와 대결하기 전에 너무 긴장됐고 아이들에게도 혹시 질수도 있으니 울면 안된다고 말했는데 승리 후 큰 아이가 울더라. 전엔 그런 일이 없었다. 아빠가 힘들게 당구를 치는구나 싶어 감동 받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큰 딸이 학교에 가면 아빠가 우승했다고 친구들에게 알려준다고 하더라"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또 다시 '반짝 우승'이라는 오명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도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상처도 많이 아물었고 정신적으로도 괜찮다. 체력만 조금 키우면 앞으로도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며 "첫 우승 때는 PBA가 쉬운 줄 알았는데 양지에서 음지로 팍 내려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짝 선수야', '실력 안 돼'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무서웠다. 이번 대회에선 끝내기 점수로 이긴 적이 많았다. 스스로도 대견하고 탄탄하게 잘 한 것 같다"고 이번 우승이 더욱 기쁘다고 밝혔다.
최원준은 팀리그 출범 후 소속팀 없이 개인리그에서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팀에 소속되지 않은 선수가 좋은 기량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두 딸에게 약속한 것처럼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선수생활에 전념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이를 위해선 팀리그 합류가 필수적이다. 최원준은 "어느 팀이든 불러주시면 열심히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지금은 팀리그를 뛰면 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환경 속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동료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1부 선수들은 누구나 우승 후보라고 생각한다. 세트제이고 승부치기가 있는 게임"이라며 "모두 잘 치는 선수들이다. 상대가 네임드, 외국 선수라는 걸 인식하면서 치면 안 된다. 치기 전에 외국 선수라는 인식하면 안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하는 뱅크샷 같은 걸 더 연습하고 언제든 우승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하다. 나도 스스로를 의심했는데 멘탈 교수님과 상담하면서 '네가 최고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린 게 도움이 많이 됐다. 1부 선수들이라면 무조건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았다.
2차례 우승으로만 상금 2억 원을 챙겼지만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인생 역전을 이야기하기엔 갈 길이 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너무 어렵다. 은행에서 많이 빌려놓은 돈이 있어서 대출을 갚고 격려해준 분들을 찾아가 맛있는 고기를 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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