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전쟁은 막아야 하지 않나

한겨레 2023. 11. 16.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스라엘 아슈켈론에서 방공 시스템이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가한 뒤 이스라엘이 보복 공습에 나서면서 지금까지 양쪽에서 1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양희│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10월7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는 1200여명이 사망한 반면 가자지구에서는 무려 1만12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그중 4000명가량은 무고한 어린이다. 그러나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중동마저 포연에 휩싸인 인도적 참상이 지구본에는 복잡한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다. 이는 유럽에 쏠렸던 전세계의 이목을 단숨에 중동으로 돌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더욱 옥죌 수 있게 만들었다. 중국에는 ‘팝콘 각’이다. 중국은 원유 수입의 40%를 의존하고 있는 중동의 정정 불안이 반갑지 않겠으나 미국의 시선을 빼앗는 혼돈이 싫을 리도 없다. 2차 세계대전 뒤 미국 주도 국제질서 구축은 기존 유럽의 패권국들이 세계대전에 휘말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과거 영국 자리에 미국이, 미국 자리에 중국이 있다. 러시아에도 중국에도 중동의 비극은 비극적이게도 비극이 아니다.

그들의 대척점에는 서방이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서방에 깊은 내상과 균열을 내고 있다. 가자의 비극에 잊히고 있는 또 다른 비극의 전장 우크라이나는 최대 피해자다.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을 선언했고 서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감은 높아져 간다. 두개의 전쟁에 시선이 분산된 미국은 세번째 전쟁이 터질지 모를 아시아도 외면할 수 없다. 러시아에 퍼부은 맹비난과 경제제재의 화살이 이스라엘에는 비껴가는 서방의 이중적 행태는, 내부로부터 반유대주의에 불을 지피는 부메랑이 되었고, 이들은 다시 친이스라엘 시위대를 불러내며 찢기고 갈린다.

아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국제 에너지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세계경제의 원유 의존도 저하, 원유 수입원 다각화, 원유 비축분 증대, 원유시장 선물거래 발달 등으로 현 상황이 1970년대 오일 쇼크 때와는 다르다고 세계은행은 밝혔다. 세계경제 침체 우려도 유가 상승을 막고 있다. 그러나 혹여 이란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을 막는 상황으로 비화된다면 세계경제는 요동칠 것이다. 중동의 평화를 염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두개의 전쟁의 수혜자는 더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뒤 록히드 마틴, 레이시언 테크놀로지, 노스럽 그러먼 등 거대 미 방산기업으로 구성된 상장지수펀드(ETF)는 약 7% 급등했다. 세계적인 무기 품귀 현상 덕택이다. 다급해진 우크라이나는 무기 증산을 호소하고 나섰으나 당분간 해소 난망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세계 군비지출(2조2000억달러)은 냉전 뒤 최고 수준이다. 이제 미국의 최대 무기 구매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해 중동 국가들도 군비 확산의 가속페달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불붙은 방산의 활황은 더 많은 화약고를 원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개의 전쟁은 “국제법은 힘없는 자에겐 강력하나, 힘있는 자에게는 무력”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제3세계 글로벌사우스의 부상과 함께 서방의 쇠퇴와 균열을 부추겨 비평화의 시대를 장기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찬 세계에서 세번째 전쟁이 터질 가능성은 결코 제로가 아니다.

한국도 두개의 전쟁에 힘입어 방산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21세기 서방에 신속히 대량으로 가성비 뛰어난 지상전 무기를 공급할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분단의 비극은 서방의 무기고가 되는 역설을 낳았고 보호주의 진영화는 방위산업에서 급진전 중이다. 이에 고무된 한국은 대통령실이 나서 무기 수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어디에 뭘 많이 팔았다고 동네방네 자랑이다. 우리 안보를 위해할 심각한 근시안이다. 유럽이나 중동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지정학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직면한 일촉즉발의 안보 위협을 직시한다면 무기 수출은 신중하고도 내밀하게 추진할 일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다다익선식 방산 수출이 아니라, 자국민과 영토, 주권 수호에 복무하는 방산 협력이다. 세개의 전쟁은 막아야 하지 않나.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